그림 음악 인문학

서양화가 이두섭 - 들꽃, 아름다움과 생명력의 잠언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14. 4. 25. 08:13

 

 

 

 

  

천천히 그것은 120×60mixed media

 

 

바람에 의해 나부끼는 여린 풀잎의 움직임. 문득 가던 길 멈추게 해 를 깨운다. 인연과 우연. 바람을 타고 온 꽃향기가 나를 이끈 것일까. 파스텔 톤으로 묘사한 화면엔 꽃무더기 벌판 위로 아스라히 흰 구름이 지나가고 있다자연에의 외경심(畏敬心). 인간과 공명할 때 자연은 위대한 잠언으로 우리 곁으로 다가오나 보다.

 

꽃만은

화면의 거친 마티에르 층. 그 위에 희석된 안료를 칠하고 다시 물을 흘려 농담(濃淡)을 조절한 돌출과 함몰 사이에 흘러 다닐 물감들의 작은 입자. 저녁, 교교한 달빛이 쏟아지노라면 보일 듯 연 꽃술의 정감이 조형미를 자극한다. 시인 송근배씨는 공기의 미묘한 흐름, 혹은 빗소리 같은 다분히 추상적인 것들을 그만의 정서로 표현해내고 있는 화면은 애매한 것과 정확한 것들의 간극에서 자유로움을 갈구하는 바로 질긴 생명력과 연결된 들꽃의 소박한 아름다움이라고 썼다.

 

오묘한 발색, 풍요로운 화면. 물고기마저 창공으로 튀어 오르게 하는 진실은 곧 꽃향기에 반했던 것이리라! 그것은 기꺼이 외로움의 바닥을 차고 부유하는 희망을 닮아 있다. 언제나 꽃만은 스스로 그러하듯이오늘도 같은 자리에 핀 향기 진동하는 꽃잎 위로 지난 밤 내린 빗물이 아스라히 어른거린다.

 

 

 

바람으로 48×48mixed media. 천천히 천천히 67×60mixed media.

 

 

 

내밀한 언어

그는 평면 위에 묘사 되는 전통적 방법에서 조립과 중첩이라는 방법을 선택해 시각의 영역을 넓히고 있는데 신작 천천히 그것은이 그러하다이두섭 작가는 몇 개로 그려진 그림으로 조립되어지는 복수성의 화면은 아크릴이라는 공업적 결과물 위에 그려진다. 들꽃과 공업은 자연과 문명의 지혜로운 조화를 의미한다라고 노트에 썼다.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고 그 위에 4개의 아크릴 각각마다 작업을 해서 모두 5개의 화면이 겹겹이 조화를 이뤄 관람자에게 새로운 시각의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때문에 자연의 생명력인 리얼리티가 살아 있는 화면은 무공해의 햇살이 가득히 꽃들에 내려앉았다노랑이며 은색이며 나아가 연보라색 등으로 연하게 반짝 반짝하여 우리들 내면 순수의 원형을 자극하는 태양. 정면에서 보는 고정된 이미지뿐만 아니라 보는 각도에 따라 적절히 그림자가 형성되어 꽃들이 바람에 하늘거리며 손짓하고 있다김영재 미술평론가는 작가의 내밀한 언어가 어떻게 객관화될 수 있는지 보여주고 숱한 시도가 하나의 화면에 중첩되고 있다고 평했다.

 

 

희망의 암시

정렬된 풍경이 아니라 작가의 시각으로 재해석된 화면은 판타스틱 한 풍경으로 연출되어 우리들 의식에 자리한다. 무심히 지나친 것들

그런데 그것들이 저 깊은 곳에서 어느 순간 떠올려지는 것. 정녕 예술이라는 것이 정답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말할 수 없는 것들에게 나오는 것도 이와 같은 것인가.

 

작가는 “‘이거다라고 줄 수는 없다. 예술로서 긴 생명력으로 보자면 관람자의 몫이다. 평생을 책임질 작품에 대한 작가로서의 의무감이기에 중요 작품으로 남아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라고 소망했다바람만이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희망도 그렇다라고 말했다. 그것은 작가가 순간에 대한 아름다움보다 진행형의 가변적 진실에 대한 성찰의 결과를 중시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어느 날 물고기 한 마리가 순노랑 꽃을 문채 꼬리를 흔들며 창공을 날아간다. 물길을 뒤로 한 채 따라가고픈, 애씀. 희망은 운명을 걸어야만 흐르는가 보다.

 

출처=이코노믹리뷰 문화전문기자 권동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