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正念, Stainless Steel on Painted 235(h)×360(w)×300(d)㎝, 2010
늦가을이었다. 구불구불한 과수원 울타리를 달빛이 치마폭처럼 휘감아 미묘한 감정을 자아내고 있었다. 농염한 여인의 뺨처럼 주렁주렁 달린 볼그스름한 사과는 리듬을 즐기는 듯 흔들거렸다. 초록잔디는 싱그러운 물과 부드러운 바람으로 그들을 격려했다. 적막이 흐르는 그 시각, 노랗게 익은 탱자향이 푸르른 빛줄기 사이로 밤새 뿜어져 올랐다.
사과 모자상(母子像), Stainless Steel on Painted 114(h)×100(w)×100(d)㎝, 2011
회귀와 순환 그 공존의 경계
작품엔 사과, 배추, 붓다(Buddha)이미지를 비롯한 군상의 얼굴 등 여러 소재들이 등장한다. 그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시대의 문제의식들을 특유의 섬세하고도 예리한 통찰의 언어로 만드는 능력을 부여받은 듯하다. 정신과 육체의 친근한 서정성이 내재된 작품에선 때문에 바로 직접성(直接性)이 전달된다. 이것은 작품의 단순성이 주는 깊이감과 더해져 흡인력을 발휘한다.
Stainless Steel Fiberglass, 118(h)×100(w)×100(d)㎝, 2008
숨겨진 혹은 잠재된 ‘나’의 감각처럼 ‘모자상(母子像)’은, 증식에너지를 느끼게 한다. 그런가하면 ‘따로 또 같이’ 하나로 껴안은 강렬한 연대감을 전한다. 그러다 좀 더 사유의 도량으로 바라보면 두 개의 사과가 분리된 것이 아니라 경계를 잇는 자리를 공유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바로 그 지점 즈음, 은색속살 공간에 각양각색의 얼굴들이 비춰질 것임을 직감하게 된다.
부자상(父子像), Painted on Bronze, 180(h)×160(w)×154(d)㎝, 2004
작가는 “여느 과일과 달리 사과는 세계 공통으로 맛이 같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것이 단서일까. 금단의 사과에서 에로스(Eros)의 상징이기도 한 이 과일은 정신사와 자연사를 가로지르는 교통(Intercourse)이라 할 정도로 나에겐 망설여지는 기괴함의 원천”이라고 메모했다. 어머니와 자식사과가 크기만 다를 뿐 고유의 색은 그대로 존재하고 유사성의 친화가 대칭적 공간에 각기 전체성을 가진 완전체로써 존재한다. 이들을 끈끈하게 결속하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적도를 중심으로 지나는 회귀선(回歸線)처럼 반드시 만난다는 믿음의 확신이다. 그것은 동시에 대립과 갈등의 소통부재, 존재의 불균형을 지우는 정념(正念)의 가교가 되고 있는 것이다.
부다 부자상, Painted on Fiberglass, 68(h)×53(w)×56(d)㎝, 2008
생성과 소멸의 보편적 존재들. 그 각성(覺醒)의 시간에 만나는 명상, 생멸의 화두에 잘 익은 사과 하나가 우주순환의 진리를 안고 둥실둥실 향기를 휘날리며 ‘내’ 품으로 다가오고 있다. 법신(法身)의 말간미소가 ‘나’ 이전의 근원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듯 고요히 자리하고 있는데…. 순간 사과이면서 사과가 아닌 그것을 둘러싼 경계선이 흔적 없이 사라져간다. 이제는 더욱 뚜렷하게 색채가 눈에 들어왔다. 붓다얼굴에 다시 작은 ‘나’의 잔상을 앉힌다. 안긴 품안에서 왜 그런지 자꾸만 눈물방울이 아롱거린다. 색즉시공(色卽是空)이라했던가, 유한한 인간의 꿈이여!
The Statue of father and son, 23×80×25 inch, Fiberglass, 2004
‘자아’를 닮은 얼굴의 질문
거리를 종종걸음으로 오가는 많은 사람들. 누구나 또 다른 ‘자신’을 어딘가, 누구에게 두고 사 는 건 아닐까. 연인에게 가 있는 또는 그가 내 안에 있는 반쪽처럼. 그 하나가 나를 닮을 때 혹은 그에게 동화될 때 생의 비밀은 조금씩 판독되고 서로의 눈길이 마주치는 어느 순간, 마음의 심연(深淵)에 비치는 참됨을 힘껏 끌어안아야만 할 것이다.
△출처=Leader & Wisdom 경제월간 <Insight Korea(인사이트 코리아)> 2014년 9월호 기사
△글=이코노믹리뷰 문화전문기자 권동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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