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동철의 화가탐방

[권동철의 화가탐방]화가 조향숙‥비워짐과 생성됨[Thoughts on the woodcut of Jo Hyang Sook,임영길 평론⑤,Hyang Sook Painter,조향숙 작가,Yim Young Kil Art Critic]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24. 11. 1. 21:07

도판(fig)14-뭉크의 목판화, 절규. 제공=임영길.

 

 

우리나라에서 목판화는 전통적으로 배나무, 박달나무, 자작나무, 은행나무, 벚나무, 피나무와 같이 단단하며, 옹이가 비교적 적고 결이 고운 나무들을 사용했다. 목판화는 나무의 모성으로 세계를 받아들이고 표현하는 매체다. 나무는 계절과 기후의 변화에 따라 자라온 시간과 경험의 축적으로서 나이테를 형성한다.

 

이것은 인간들이 몸담고 사는 세계의 변화에 맞서 형성된 마음과 닮았다. 이러한 나무가 가진 거칠고 균질하지 않은 표면에 작가가 깎고, 새기는 제판 과정에서의 직접적인 신체적 경험을 더해서 자연의 감수성뿐만 아니라 인간사의 질곡과 상처, 그리고 행복한 순간의 자국들까지 잘 표현할 수 있는 매체다.

 

이렇게 나무는 땅과 햇빛, 그리고 물에 의해서 ‘생’했지만(수생목), 목판화용 칼인 금에게 ‘극’을 당함으로서 자신이 완성되는 것이다(금극목). 밑그림에 따라 판재에 다양한 목판화용 칼로 힘을 가해 새기면 나뭇결의 강도에 따라 신체에 마찰에 의한 저항을 촉발하며, 신체의 맥박과 호흡의 리듬과 함께 판재를 새기는 소리, 미세한 냄새와 시각적인 감각을 동시에 느끼면서 작가의 감정을 풍부하게 표현할 수 있다.

 

이러한 제판 과정에서 판재는 ‘비워짐’과 동시에 ‘생성됨’에 의해 형상화되는 것이다. 이렇게 나타난 이미지는 자연의 생명력을 가지며, 단순하면서도 강렬하다. 목판화는 손끝의 감각에서 시작해 정신으로 올라가, 신체의 감각과 정신이 유연한 관계를 맺는 매체다.

 

뭉크(Edvard Munch)는 같은 이미지를 유화와 목판화로 병행해서 제작했다. 이는 유화에서 충분하게 해소되지 못한 감정의 여분을 목판화를 통해서 완전히 분출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도판14-뭉크의 목판화, 절규)

 

마치 유화의 질료로는 해소할 수 없는 부분을 목판에 새기고 각인함으로 그의 기억을 남기려고 시도했다. 붓과 물감 등의 재료를 사용한 부드러운 감각의 유화가 단단한 표면의 나무판재를 날카로운 칼로 베어내는 목판화의 물성으로 바뀌어 더욱 강렬한 표현에 도달한 것이다.

 

조향숙도 한국화를 목판화와 병행한다. 한국화로 해소하지 못한 행복하거나 즐거웠던, 혹은 아팠던 기억들을 목판을 비워나가는 행위를 통해서 내적 감정표출을 직접적으로 할 수 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목판화가 지닌 강렬하고 표현적 특성은 작가의 내면세계를 더욱 강렬히 나타낼 수 있었을 것이다. 목판화는 작가에게 궁극적인 자극으로서 감정이입과 표출로서 예술의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이러한 행위를 통하여 작가에게는 긍정적인 삶의 이유로, 그리고 예술의 흔적으로 반영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하는 것이다.

 

매체는 탄생하던 당시의 문화사회적 조건과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목판화는 삼국시대와 고려시대를 거치면서 주로 불교적인 세계관을 표현하였다. 당시의 목판화는 불교적 사상체계를 나무에 새겨 물성화하고 인출해서 그 사상을 전파했다. 그러므로 목판화는 불교라는 당시의 유산을 현재로 옮기는데 적합한 매체이다.

 

불교적 세계관에서는 타자에 대한 자신의 상에서 벗어나야 하고, 불행과 행복은 두 개가 아니라는 것을 가르친다. 작가는 불행하게 만드는 자신의 상을 지난하게 제거하는 행위를 통해서 소거된 판각의 부스러기만큼 행복의 상을 실현시키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렇게 조향숙의 목판화는 동양사상을 반영한다.

 

그녀의 목판화는 도교의 ‘비움’에 의해 비로소 ‘생성’된다는 ‘유무상생’, 그리고 명리학에서 ‘생’보다는 ‘극’을 통한 완성이라는 것(수생목에서 금극목으로), 불교에서 무아를 통한 진여(眞如)를 만나는 길과 행복과 불행은 불이(不二)라는 것들과 같은 우리의 것에 대한 새로운 조형적인 해석을 통해서 생성되는 창조적 에로스를 실현을 하고 있다.

 

이것은 서구에서는 동양 사상에 관심을 보이는 것에 반해서 우리는 서구의 가치를 더 높게 여기고 추종하는 상황에서 매우 의미 있는 것으로 보인다. 조향숙은 이와 같이 과거 우리 민족의 축적된 위대한 문화유산에 접근해서 어떻게 살아 숨 쉬는 민족의 생명력을 재해석, 재생산해야 하는 가를 고민해 우리 전통의 맥을 현대에 되살리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더불어, 거대한 인터넷 매체환경을 기반으로 하는 이 시대에 어떻게 현대판화에서 기법을 포함한 형태와 질감, 공간해석과 같은 첨예한 형식적인 문제들을 표현하고, 예술에 인간적인 손맛의 특성을 적용해야 하는가를 이번 전시의 그녀의 목판화 작품들에서 잘 반영하고 있다.

 

▲글·도판제공=임영길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판화과 교수, 2020.12.

Writing and fig=Yim Young Kil, professor of printmaking College of Fine Arts Hongik University, 2020.12.

 

▲[한글평론 원제목]우리 전통의 정신과 형식에서 지속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행복한 기억들”연작–조향숙의 목판화에 대한 단상(斷想)들-

[English criticism title]The Series “To Find Lost Time-Happy memories”, Continued in the Spirit and the Form of Korean Tradition–Thoughts on the woodcut of Jo Hyang Sook-

 

▲자료출처= Jo Hyang Sook, To Find Lost Time-Happy memories(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행복한 기억), 2020. 12.2~7. 선 아트센터(SUN ART CENTER)개인전 도록에 수록.

 

[참고문헌]

-임영길, 임필효, 조선시대 목판화의 매체적 특성 연구, 홍익대학교 논문집, 미술디자인 제7 , 2002

-조향숙, 비의도적 기억을 통해 나타난 시공간 표현연구작품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연작 을 중심으로, 박사학위논문, 홍익대학교, 2012

-임영길, 판화의 물성적 표현에 관한 연구, 예술과 미디어, 122, 한국영상미디어협회, 2013

-임영길, 이시은, 독일표현주의 목판화에서 외상(Trauma)적 표현연구, 조형디자인연구, 183, 한국조형디자인학회, 2015,

-임영길, 이시은, 한국현대판화에서의 푼크툼 연구, 조형디자인연구, 193, 한국조형디자 인학회,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