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품을 말하다

[1년 one year]사진작가 이현권‥“1년은 반복됩니다!”[사진가 이현권,이현권 작가]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23. 10. 14. 19:05

3월15일

 

1년 one year

△글=사진작가 이현권

 

내가 서 있는 곳. 이곳 작업의 시작은 먼저 계획된 무엇인가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반복된 나의 삶의 궤적 중에 나도 모르게 시선이 모여진 곳. 수년간 나는 같은 곳을 보고 있었지만 내가 보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곳이었습니다.

 

어느 순간 그냥 지나쳤지만 관심이 집중되었던 이 장소를 아무 계획 없이 사진을 찍기 시작한 순간도 내가 왜 이곳을 바라보는지, 내가 이곳에 나의 시선과 관심, 또는 모아지는 감정의 우물과 같은 이곳에 대해 몰랐습니다.

 

 

5월14일

 

이곳은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지만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는 곳입니다. 옆에 고속도로, 위에 국도가 있어 하루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의 시선들에 보아지지만 전혀 기억할 수 없는 장소, 즉 이곳은 어떻게 보면 기억할 만한 의미가 없는 주위에 반복되고 흔한 장소였습니다. 하지만 그곳은 인간에겐 소외되었지만 자연과는 끊임없이 대화를 합니다.

 

이곳을 바라보면 그 안에 풀의 움직임이 느껴집니다. 빛과 어둠이 만들어낸 또 다른 다양한 색을 만나게 됩니다. 그 안에 피는 꽃도 반갑고 긴긴 겨울을 견딘 땅의 힘을 가지고 피는 봄의 초록도 그렇게 정겨울 수가 없습니다. 화려한 가을의 색깔은 없지만 나름 낼 수 있는 최선의 색으로서 자신의 아름다움을 표현합니다. 그리고 삶의 끝에 순종하듯 모든 에너지를 털고 죽음의 색으로 견딥니다.

 

 

8월28일

 

그들의 1년은 반복됩니다. 나는 1년을 계획으로 사진을 찍었지만 그 이후도 사진을 찍습니다. 그들은 1년 후에도 거의 변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어쩌면 1년을 기준으로 우울하게 삶을 반복하고 언제 변화가 될지 모르는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자연이 주는 빛과 계절이 주는 색을 반복하여 지루해하지 않고 그 위치에서 주변의 흙과 이름 없는 풀, 잔 나무들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갑니다.

 

나는 여기에서 사회 속에 있는 군중의 시선으로의 나를 보았고 내가 바라보는 사회와 군중들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흔적 없이 사라지지만 인간이란 큰 역사적 흐름 속에 면면히 이어져 오는 내 이웃들, 내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보았습니다.

 

 

10월27일

 

나는 사진을 찍는 내내 우울했습니다. 그리고 그 우울감이 어디에서 왔는지 고민을 해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1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그 곳을 바라보고 사진을 찍으며 말할 수 있는 나의 이 우울감은 다름 아닌 이곳이 인간의 삶 아래 '내가 서있는 곳'이라는 것을 인정하기까지의 과정이 아닌가라는 느낌입니다.

 

나의 한계성과 중심성의 세계를 고통스럽게 깨는 과정 중의 감정, 즉 나의 나르시시즘의 틀에서 바라보는 감정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제 그 껍데기를 힘겹게 걷어내어 내가 서 있는 곳과 그 주변을 보며 지루한 한계성과 반복은 작은 생명이 되고 공허한 무의미함이 조그만 의미가 되기를 기대해봅니다. [이현권 ‘1년(one year)’ 작가노트, 2013]

 

 

12월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