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품을 말하다

‘호랑이작가’양수연‥의인화 및 해학적인 해석에 의한 친근한 이미지의 호랑이[도예작가 양수연,도예가양수연,양수연 작가]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24. 5. 23. 16:10

우리 땅 우리 호랭이, 사진=이내정.

 

한국화단에 불고 있는 민화 열풍이 심상치 않다. 한국미술협회에 민화 분과가 신설된 이래 민화 인구 및 전시의 폭발적인 증가추세가 이를 뒷받침한다. 이제야 한국 고유의 전통 회화인 민화가 재평가되는 시절이 도래한 모양이다. 민화에 대한 화단의 관심은 기존의 채색화 분야는 물론이려니와 유채, 아크릴, 수채 그리고 조각에 이르기까지 그 확산 속도가 피부로 감지될 정도이다. 이를 실증하듯 도자기 분야에서도 일부 작가들에 의해 민화의 이미지를 작업에 도입하는 경우를 심심찮게 본다.

 

양수연 작가의 경우가 그렇다. 전통적인 도자기와 현대도자기를 병행해 온 그가 도조에 시선을 돌리면서 민화 이미지를 작업에 도입, 납득할 만한 성과를 가져오고 있다. 근래 한국미술계에서는 장르 간의 경계가 허물어짐에 따라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표현이 쏟아지고 있다. 회화에서 조각적인 요소를 도입하는가 하면, 조각에서는 회화적인 이미지를 가져오는 상황이 되었다. 어쩌면 도조라는 개념도 이와 같은 시대적인 변화가 불러온 새로운 경향의 표현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땅 우리 호랭이, 사진=이성용.

 

도조는 도자기와 조각의 특징을 하나로 묶어낸 표현 양식이다. 도자기 재료, 즉 흙으로 조각을 만든다는 개념인데, 조각과 달리 속이 비어 있다. 물론 조각에서도 소조는 진흙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보면 도자기와 유사한 점이 있다. 이처럼 도자기와 조각의 조형 개념을 통합한 듯싶은 도조가 미술 애호가들의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도자기나 조각에서 볼 수 없는 다양한 기법에 따른 새로운 표현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양수연 도조 작업은 전래의 건국 신화 및 민속신앙과 밀접하게 관련된 호랑이를 소재로 한다. 범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는 호랑이는 그 용맹함으로 인해 예로부터 우리 삶에서 벽사의 의미가 받아들여졌을뿐더러, 산신의 사자로 상징될 만큼 영물 또는 신수神獸로서의 자리를 지켜 왔다. 그런데 도조라는 이름의 호랑이 형상은 호랑이에 대한 기존의 이미지를 불식시킴과 동시에 우리의 삶의 공간으로 끌어들이고 있다는 점에서 재미있는 접근이다.

 

우리 땅 우리 호랭이, 사진=이성용.

 

이처럼 한민족의 의식 및 생활 속에 깊이 자리한 호랑이가 그의 손끝을 거쳐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었다. 창의적인 예술 행위라는 마술에 걸려든 호랑이는 용맹성을 간단히 벗어버린 채 아주 친숙한 존재로 탈바꿈하고 있다. 힘과 용맹을 상징하는 존재로서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통통하게 살찐 이미지로 인해 유머러스하게 보인다. 달리 말하면 호랑이라기보다는 고양이를 닮은 친숙한 모양새다. 물론 크기도 작아졌을 뿐더러 다양한 표정을 부여함으로써 호랑이라는 선입견은 간 곳 없이 사라진다. 다만 귀여운 반려동물과 같은 인상으로 다가올 따름이다.

 

호랑이라는 존재가 가지고 있는 민족적인 정서를 해학적인 이미지로 재해석하여, 반려동물을 보고 있는 듯싶은 감정에 사로잡히도록 유도한다. 따라서 강인하고 용맹스러울뿐더러 위협적인 이미지를 누그러뜨리는 방안을 모색한다. 그 하나의 해결책은 의인화하는 일이다. 호랑이를 사람과 같은 이미지로 바꾸어 놓음으로써 마치 가족과 같은 친밀감을 느낄 수 있게 한다. 토끼 머리띠를 두른 호랑이의 모습에서는 그 발칙한 발상이 시각적인 즐거움을 제공한다. 무서운 이빨을 드러내는가 하면 박장대소하는 듯한 큰 입, 애교 섞인 표정, 장난기 섞인 눈에서 볼 수 있는 희화적인 이미지에서는 세상을 향한 그의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우리 땅 우리 호랭이, 사진=이성용.

 

도예작가 양수연 호랑이 형상에서 가장 돋보이는 건 민화에 등장하는 꽃의 이미지이다. 검은색 띠 대신에 알록달록한 꽃의 이미지를 등에 업은 호랑이의 모습은 전혀 새로운 감정을 유발한다. 아름다운 형형색색의 꽃이 지닌 힘이다. 이렇게 되면 호랑이는 보이지 않고 회화적인 이미지로서의 꽃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도자기가 조각으로 바뀌고, 조각이 그림으로 바뀌는 마술을 보게 되는 셈이다.

 

그가 구태여 호랑이라는 하나의 소재만을 다루는 건, 그 상징성을 기반으로 하여 거기에 회화적인 이미지를 도입, 조형적인 세계를 확장하는 데 의미를 두려는 것이다. 도예가 양수연이 취하는 표현 방식이 완전히 새로운 건 아니다. 그렇더라도 자기만의 색깔을 드러내는 데는 부족함이 없다. 그림이든 조각이든 도자기이든 누군가에게 미적 감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존재가치는 충분한 것이 아닐까. [글=신항섭 미술평론가, 2023.9.]

 

‘호랑이작가’ 양수연. 사진=이성용, 2023.

 

 

[5월23일, 2024. 인사이트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