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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GHT FINE ART]사진작가 이현권‥고통과 희망 경계의 자국[사진가 이현권,이현권 작가]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23. 9. 8.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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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존재하는 것은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시대는 흘러가면서 반드시 칼로 새긴 듯한 흔적을 남기고 어떤 시대는 뜬구름이 흘러가듯 평범하고 담담하게 별로 이상할 것 없이 지나가기도 한다. 바람이 불고 비가 오는 것처럼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약간의 맛만 남길 뿐이다.1)

 

 

(왼쪽)Restoration(복원)_part 1_40 (오른쪽)part 1_12

 

강물에 닿을 듯 낮게 무리지어 맴도는 하루살이들이 오므려지다 펴지는 풍선처럼 허공을 자유롭게 유동했다. 햇빛사이 슬로 모션으로 떨어지는 물방울이 명랑하게 튕겨 오르는, 번짐의 공간이 짓궂게 퍼져갔다. 미숙했던 ‘나’의 분신이 물 위에 어른거릴 때 암울했던 불안이 버림받은 채 당당히 흘러가는 물살위로 스러져갔다. 에릭 사티 ‘짐노페디(Gymnopedie No.1)’ 피아노 선율이 풋-의식으로 배회하는 가냘픈 영혼의 축축한 발등으로 젖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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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흐름 복원의 사회학

화면은 무의식에 얹힌 카를 융 ‘원형(Archetype)’같은, 멍울을 숨긴 아니 아물어가는 근원처럼 섬세한 구도의 흑백이미지로 드러난다. 혼자 내려오는 넓은 계단 옆 벽에 투영된 왜소한 ‘나.’ 바닥글씨가 선명히 부각되는 빛과 그림자의 극명한 대비, 늘어뜨린 버들나무 가지와 깊은 생각에 잠긴 뒷모습 그리고 나뭇잎사이 어른거리는 햇살의 미묘한 실루엣….

 

사진은 이현권 작가가 정신과 의사로 첫 발을 디뎠던 전공의 시절 2007~2009년 촬영된 것으로 필름이 손실되는 아픔을 겪게 된다. “…그렇게 10여년의 시간이 지난 후 아주 우연하게 갑자기 낡은 사진으로 남아있는 먼지 가득한 사진들 그리고 버려진 듯한 필름들을 발견하였다. 힘들게 지내 잊어졌던 나의 기억들이 흐릿하게 저편에서 보이기 시작했다.2)

 

사진 속 형상은 쓸쓸함과 가냘픔, 고독과 체념의 뉘앙스를 풍기지만 그럼에도 냉정과 연민, 고통과 희망을 아우르는 열린 가능의 관계성을 힘겹게 모색하고 있다. 당시 젊은 의사로서 긴장을 풀 수 없는 직무사이에 밀려드는 다양한 감정과 정신분석에 대한 탐구열정이 곳곳에 배어있다.

 

그래서일까. 무의식의 의식화 흐름을 관조하는 이현권 사진의 독자성이 이 때 형상화되고 있었다는 증거의 화면엔 고해를 다독이는 따뜻하고 세심한 치환(置換)의 통찰력이 스미어 있다. 유실에 대한 아픔이 컸지만 결과적으로는 ‘서울 한강을 걷다’시리즈라는 새로운 작업세계를 열어준 역설 그리고 한국정신병원사의 사진미학을 담보해내는 예술적 가치라는 의미가 동시에 부여되고 있다.

 

“우리는 알려지지 않았거나 미래에 있는 것이 지니는 의미를 언제나 이미 흘러간 것에 대한 정신적 이해에 따라 파악하려고 노력한다. 지금 우리에겐 무의식은 의식이 따르는 법칙과 다른 법칙을 따른다고 단정할 근거가 전혀 없다. 무의식도 의식처럼 생물학적인 문제들 주변으로 모이며, 예전에 일어났던 일을 바탕으로 유추하면서 문제들의 해결책을 찾으려는 노력을 의식 못지않게 열심히 벌인다.3)

 

[참고문헌]

1)나와 아버지(我與父輩), 옌렌커 지음, 김태성 옮김, 자음과 모음 , 2011.

2)이현권 작가, 복원_part 1 에 대하여, 2023.

3)칼 융 분석심리학(Analytical Psychology,1916), 칼 구스타프 융 지음, 정명진 옮김, 부글북스 , 2021.

 

[글=권동철, 9월6일 2023,인사이트코리아 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