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타난 것을, 잘 자리 잡은 것을, 동굴에서 움직이는 자라고 이름 하는 것을, 크나큰 자리를, 이곳에 온전히 바쳐진 이것을, 움직이고 숨을 쉬고 눈을 깜박이는 것을, 있음과 없음을, 바랄 것을, 가장 뛰어난 것을, 생겨난 것들의 이해력을 넘어선 것을, 너희는 바로 이것을 알아라.”<우파니샤드(Upanisad), 임근동 옮김, 을유문화사>
화면은 이해와 포용의 유연한 곡선이 어우러지는 형상으로 부각된다. 장구한 세월의 인고가 켜켜이 쌓여 마침내 햇살에 드러나는 황금장식을 두른 듯 한 몸체, 까마득하여 깊숙하며 잠잠한 듯 움직거리는 저 동양적 현(玄)의 검은 빛깔, 광활한 운율의 추상서정으로 수놓은 물결과 하나 된 낙조(落照)….
한지(韓紙)의 찢긴, 갈라지며 완전히 끊어졌다라고 생각이 드는 순간 여명의 빛살에 여리게 드러나는 순환의 고리를 발견한다. 폭풍이 휩쓸고 간 모든 것이 상처투성인 숲속. 축축한 땅위에 널브러진 파편들은 이리저리로 무질서하게 흩어진 듯하지만, 놀랍게도 약속이나 한 듯 서로를 가교로 잇대어 생명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견고한 오브제의 물성을 통해 억겁세월 변화무쌍한 우주가 빚어내는 삶의 존재성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적요한 생동의 존엄
융기의 순환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광물과 나무와 풀들 그리고 자연스레 오솔길을 만드는데 일조하는 작은 하천의 물줄기들…. 화면은 이 땅의 모든 것이 사라진 듯 한 적막의 당혹과 생경한 낯섦에서 점점이 열리는 감각과 마음의 회생을 체감케 하는 에너지로 표출된다.
슬픔이 녹아 응어리지면 드러나는 빛깔, 희열에 들떠 트이는 가슴이, 빽빽이 들어선 광야의 숲, 대양의 일렁이는 물결을 잠재우는, 긴장을 녹이는 부드러운 기대와 두려움이 혼재된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 ‘교향곡 제5번’의 북소리, 저 트럼펫팡파르가 미묘한 파동(波動)의 감정을 일으키며 퍼져나간다.
그 선율을 따라 시간의 기록으로 축척된 억겁의 기억들이 상처를 딛고 새싹을 틔운다. 평화로운 대지의 표정처럼 무심한 듯 평편한, 광활한 대지와 바다의 호흡이 적요한 생동의 존엄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류영신 작가는 롯데화랑, 다카사키시티 갤러리(일본), 갤러리 모노 엑스포제(프랑스), London Art Fair(영국), Salon Art Shopping(프랑스) 등 다수 개인전 및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그동안 자작나무와 미루나무의 향연 ‘숲속으로’를 비롯하여 ‘Cluster’, ‘The Forest-Black Hole’시리즈 등 주목도 높은 작품을 발표해 왔다.
이번 개인전은 경기 용인시 수지구 샘말로 소재, 유니끄갤러리에서 6월18일부터 7월31일까지 열린다. 인터뷰 말미 ‘Forest-Divine’시리즈작업에 대해 작가(서양화가 류영신,South Korea Painter RYU YOUNG SHIN,류영신 작가,ARTIST RYU YOUNG SHIN)에게 물어보았다.
“화폭에서 뿜어져 나오는 어떤 안도감, 내뿜는 숨소리가 선명하게 다가올 때 그것은 비밀을 간직한 채 거대하게 밀려드는 장엄한 기운의 풍경 속 ‘내’가 존재한다는 것과 다름 아니다. 인간과 대자연의 상호유전정보사슬에 내재된 원시메커니즘(primitive mechanism)의 신경망을 느끼게 되는 때, 나는 종종 화폭 속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없는 큰 세계를 만나곤 한다.”
[글=권동철 미술전문기자, 2020년 6월1일, 데일리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