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결의 색채 마음의 모습
“개는 하루 종일 돌아오지 않았다.…코지모 형은 매일매일 물푸레나무 위에서 초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그 풀밭에서, 오래전부터 마음속에서 자신을 괴롭혀 오던 어떤 것, 그러니까 거리, 결핍감, 저세상까지 이어질 수도 있는 기다림에 대한 생각을 읽을 수 있기라도 하듯. 1)”
발돋움하는 여명의 맑은 기운은 초록대자연과 친밀한 교감으로 빛났다. 낮은 곳으로의 겸양이 드러내는 조화로움의 삶은 치유의 따스함으로 일순 안정감으로 다가왔다. 양떼의 공동체적 삶에 대한 교감과 이해는 침묵이 저토록 숭고한 정경을 잉태할 수 있을까를 상기 시키고 화폭엔 꿈결이 지나간 미혹(迷惑)의 여운이 전율로 묻어난다.
이현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그림그릴 땐 외부와 접촉을 거의 하지 않는다. 로마에서 밤샘작업에 몰두하던 때, 뉴스에서 ‘속보’가 올라오고 있었다. 세계인의 주목을 받던 여인의 갑작스런 죽음이 전파를 타고 흘렀다.
떨리는 가슴을 진정하던 때 뭔가 대지를 울리는 듯 소리가 들려왔다. 작업실 앞 넓은 공원에 엄청난 양(羊)떼가 지나가고 있었다. 양을 모는 두 마리 개, 짤막한 체구의 양치기할아버지의 동행은 진풍경이었다. 그리고 한 시간여 지났을까. 그들이 반대쪽에서 오고 겨울아침이 열리고 있었다!”
프랑스 첼리스트 고티에 카퓌송이 연주한 가브리엘 포레 곡, ‘꿈을 꾼 후에(Après un rêve)’첼로화음이 화가 이현(李晛)의 독창적 색채와 시적감수성으로 어우러져 마음의 흐름으로 승화되고 있다. 사랑과 기다림의 추상적 뉘앙스가 파노라마처럼 아스라이 스미어 가늘고 긴 활이 현을 만나 떨림으로 진동한다. 격정의 중저음 선율위로 여인이 가볍게 눈을 뜨는 듯 무어라 속삭이는 듯 느껴졌다.
그 찰나에 저 에메랄드물빛이 손에 잡힐 듯 밀려오는 신기루처럼 가뿐 출렁였다. 미명(微明)의 시간이 하루를 가슴에 품고 대지에 첫 발을 살포시 내디딘다. 그때, 행복은 그대 가까이 있는 건지 모른다는 아렴풋한 음성이 칸토(Canto)에 묻혀 들려오고 있었다.
◇관조와 명상 오방색채감
광활한 블루의 우주가 열려있다. 보일 듯 말 듯 서 있는 작은 존재의 사람. 지구라는 작은 별에서 떠 있는, 보이기도 하고 잘 보이지 않는 그 미미한 존재가 대우주와 섞여서 공존한다.
이현 미술가는 “모든 것이 하나로 보이는데 그 하나에 섞여 있는 인간…. 작품 ‘방랑’은 내가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이 달리 보이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의미엔 “나와 우주는 하나”라는 예술가의 깊은 명상적 사유가 동행한다. “우리 생(生)은 출발한 곳으로부터 끝나는 곳까지 달려서 가 닿는 것으로 마감된다. 미망, 욕망을 버린 생은 평화롭다.2)”
바람이 타고 넘는 저 언덕너머 아스라이 잡힐 듯 한 황색대지, 이성과 헌신 양떼의 색(色), 붉은 양귀비꽃 동산…. 어스름과 신선한 공기가 친근의 감각으로 어리어있는 화면엔 음양(陰陽)조화로움의 오방빛색채감이 내재한다. 우주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이치를 담은 메타포는 궁극의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이라는 또 다른 이름의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이 아닐까.
“이현 작가는 대상을 통해 반응한 자신의 몸과 정신의 깊이를 시각화하고자 한다. 그래서 동양적인 관조와 명상에 보다 기울어진 그림이다. 이는 어느 의미에서는 서구현대미술의 평면성과 해석된 추상적 의미가 동양의 회화세계와 흡입된 한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로 인해 그림은 우리에게 안락과 고요함의 세계가 자연의 절대적인 성향임을 일러준다. 그것은 도시화, 현대화, 세속화의 가장 먼 끝에서 고요하게 빛난다.3)”
[참고문헌]
1)나무 위의 남작(IL Barone Rampante), 이탈로 칼비노(Italo Calvino)著, 이현경 옮김, 민음사刊.
2)지중해의 빛-열정, 이현 글·그림, 대교베텔스만(주), 2007년刊.
3)박영택 미술평론가.
△글=권동철, 1월10일 2023. 인사이트코리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