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는 아무도 사러오지 않는 쓸쓸한 시장에서, 농부가 빵을 바라며 헛되이 쟁기질하는 시든 벌판에서 팔린다.1)”
한 때 창(窓)너머 초록풀잎들이 싱그럽고 미풍에 하늘거리던 초원과 야생화 향기로 넘쳐났을 저 언덕아래…. 그러나 화면은 야산억새가 쓰러지고 거침없는 칼바람이 휑한 창을 통해 불어 닥치는 황량한 공간이다. 비바람을 막아주며 아늑한 잠자리를 선사했던 마구간문짝은 어디론가 날라 갔다.
흙벽을 지탱해 주던 나무들은 하나 둘 바닥으로 곤두박질쳐 있어 언제 와르르 무너질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긴박감을 암시한다. 염소를 잡아주던 고삐는 곳곳이 헤져 허술하게 목 뒤로 늘어진 채 유명무실한 중심(中心)이 되어버렸다. 윤기 흐르던 털은 푸석하고 벗어나고픈 갈망처럼 한쪽 눈은 휙 돌아가 단절과 고립의 적막감에 전율케 한다.
어디로 가야할지를 몰라 발을 뗄 수 없는 질곡(桎梏)의 상태를 질주하는 불안의 감정이 곳곳에 드러난다. 카오스(chaos)적 공허감이 감도는 화면은 극적(劇的)요소로 가득하다. 두텁게 쌓아올린 엉킨 물감자국들에 드러나는 생채기는 깊은 질감에서 우러나온다. 그것엔 거칠고 막막한 광야(曠野)에 ‘홀로 서 있는 나’를 떠올리는 관람자에게 충격과 감동의 카타르시스(catharsis)를 경험하게 한다.
작가의 고도의 정신성이 낳은 절제미의 간결성이 스미어 있는 것이다. 이영박 화백은 이렇게 말했다. “힘든 시기였다. 작업에 대해 심한 갈등을 느낄 때 그렸다. ‘아! 어디로’ 명제처럼 불확실성과 무력감에 허우적거리듯 한쪽 눈이 돌아간 불안상태를 강렬하게 시사한다. 어디든 갈 수 있지만 갈 수 없는 탄식 그럼에도 또 어떤 가능의 여지가 교차하는 내면을 표출했다.”
◇마지막 생명 비의 서정
한주먹 씨앗을 품고 마지막 생명의 불꽃을 태우는 고개 숙인 해바라기들…. 바이올리니스트 이츠하크 펄먼(Itzhak Perlman)과 첼리스트 요요 마(Yo-Yo Ma) 그리고 지휘자 존 윌리엄스(John Williams)가 협연한 ‘The Chairman’s Waltz‘가 생의 번민과 멍울을 어루만지듯 그렇게 너그럽게 천천히 비감의 현(絃)이 대지를 적신다.
지하철인파처럼 세상은 바쁘게 돌아가지만 후드득후드득 떨어지는 낙숫물소리에 내일을 기약하던 청운의 꿈도 묻혀 저 강물에 흘러가노니….
#참고문헌
1)윌리엄 블레이크, 발라, 두 번째 밤. 비트겐슈타인과 정신분석, 존M.히턴(John M. Heaton)지음, 석기용 옮김, 필로소픽刊.
△글=권동철, 12월호 인사이트코리아, 202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