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모습에 투영된 삶의 편린
“유아기의 기억을 회상하는 것이나 마음의 작용이 갖는 원형적인 존재방식의 재현을 통해서―잃어버리고 재획득한 내용을 의식으로 동화하고 통합하는 것에 성공한 경우에 있어서는 의식의 보다 커다란 지평과 광활함을 창출할 수 있다.<융-무의식 분석(Analysis of Unconsciousness), C.G.융 지음, 설영환 옮김, 선영사, 1896년刊>”
산과 하늘, 해와 달, 강…. 오늘은 달빛 드리운 개울 따라 부척커진 긴 그림자를 만나볼까. 그러면 꿈도 사랑도 물살에 찰랑이며 자라나는 모습처럼 풍요로운 사유로 피어나려나. 단색과 유색의 실로 삼각, 사각, 원(圓) 그리고 직선과 곡선 등으로 형상화시킨 기호학코드는 어떤 뉘앙스의 분위기를 머금은 채 추상성의 하모니를 선사한다.
화면은 패브릭 아트(Fabric art)에 자연의 소리(Sonido)가 어우러진 형상미학이다. 꽃과 나뭇잎, 바람과 눈꽃송이가 수놓은 우리 산하(山河)뚜렷한 사계(四季)의 정취가 스미어있다. 바람, 가는 비, 밤배가 떠가는 월광의 음영 등 다채로운 묘사를 통해 음악적 멜로디의 운율을 보이며 관람자의 심미(審美)를 자극하고 기억과 현재성을 음미할 수 있도록 인도한다.
그 길 위에 ‘첼리스트 지안 왕(Jian Wang), 클래식기타리스트 고란 쇨셰르(Göran Söllscher)가 연주한, 장 시벨리우스(Sibelius) ‘피아노 에튀드(13 Pices for piano, Op.76:II. Etude)’ 선율이 바윗돌을 넘고 뭍으로 스며드는 물안개의 유려한 마중으로 넘실거린다.
“손 때 묻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원초적 자연의 느낌을 여전히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살았다는 게 다행으로 여겨진다.”라는 회화·패브릭아티스트 김성혜(Painting&Fabric Artist KIM SUNG HYE) 고백처럼, 작가는 한 세월을 살아내는 편린들을 서술하고 있는 것이다.
◇자연과 인간 소통의 시각문화
작업은 ‘18합 면사’를 자연스럽게 먹물이 올라올 때까지 장시간 담구고 먹물을 안들인 면사와 함께 섞어서 이어진다. 직선과 곡선 등 다채로운 색채의 운율로 연결되는 입체와 공간의 운동감은 자연과 인간의 담론을 부드러운 소통의 시각문화(Visual culture)로 인도하는 힘으로 작동한다.
그렇게 마음의 결을 따라 깨어나는 낙락한 이미지들은, 세상의 것들이 생성과 소멸이라는 순환의 반석위에 있는 유기적(有機的) 존재임을 상기시킨다. 이것이 김성혜 텍스타일 아티스트의 작가정신이 배어나는 현대미(Contemporary Art) 작품세계의 본질이다.
한편 김성혜 미술가 ‘소니도(소리,Sonido)’명제는 지난 30여 년 동안 삶의 파동(wave)을 조형적으로 응축한 무대이다. 이번 35회 ‘Sonido-In My Life’초대전이 10월22일부터 31일까지 서울 청담동 소재 ‘갤러리 두(Gallery DOO)’에 열린다.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마음이 시키는 대로 내 느낌에 즉흥적으로 끌려간다. 어느 때는 희열도 느끼고 고통을 치유 받는 시간도 있다. 그러니 한 가지에 안주하지 않는다. 떨어져 있는 듯 이어져 있는 실의 평온한 질감엔 우리 삶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이 담겨 있다. 나의 작품에서 좋은 기운(氣運)을 얻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글=권동철, 9월27일 2022, 이코노믹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