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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GHT FINE ART]서양화가 이태현‥천변만화의 현상학 뚝심의 혼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22. 11. 8. 18:12

Space 98100 VI, 130x;162㎝, oil on canvas, 1998

 

천변만화의 현상학 뚝심의 혼

 

“갈매기 해방인 양 자유로이 조으누나. 지붕머리 은하수라 유기는 빗겼는데 내일 아침 기쁜 일을 촛불꽃이 알려주네. 좋은 손님 오실 때는 술과 밥이 많을 테니 길한 상서 집에 가득 밤 빛도 하얗구나. 이끼 꽃 수도 없이 댓돌머리 솟아나니 산 집의 제일 가을 짐작하고 남겠구만. 석류 뒤 국화 앞에 구경거리 잇따르니 장원홍 저게 바로 풍류를 아울렀네.

 

任放沙禽自在眠. 銀河當屋柳旗斜 喜事明朝占燭華. 佳客來時多酒食 夜光生白吉祥家. 碧花無數出堦頭 占斷山家第一秋, 榴後菊前容續玩 壯元紅是竝風流.1)

 

 

 

Space 2020 130-2 VI corona, 130x130㎝, oil on canvas, 2020

 

 

이태현 화백 ‘공간(Space)’연작은 자연의 입체화를 평면에서 구현하는 회화이다. 화면엔 평면과 서로 얽히고 이어지는 다채로운 대(臺)로 함의된 일음일양(一陰一陽)의 운동성이 우러나온다. 주역 괘(卦)를 차용하고 시담(示談)의 물과 바람과 공기, 충돌이 빚은 각(角)으로 뻗치는 기운까지, 하늘과 땅을 아우르는 회통(會通)이다.

 

또한 추사 김정희가 설파한 서화동원론과 맥을 같이하며 저 심학의 물아일체세계를 관통한다. 경북예천출신화가 이태현 미술가(1940~)는 건(☰), 곤(☷), 진(☳) 등 괘 부호를 화폭에 차용, 타자와 더불어 삶을 교류하는 생명존중그림을 구현한다.

 

“이른바 충막무진(冲漠無眹)이란 것은 이치(理)를 가리켜서 한 말인데 이치 위에서 기운을 찾게 되면 충막무진하면서도 만상(萬象)이 삼연(森然)하고, 기운 위에서 이치를 찾게 되면 한 음과 한 양을 도(道)라 말 합니다. 말은 비록 이와 같으나 실상 이치만이 독립하여 음양이 없이 충막한 때는 없습니다.2)

 

이와 함께 소멸과 생성의 삼라만상이치가 녹아있는 음양오행 곧 천·지·인(天·地·人)합일과 상통하는 시간의 초월성 그 동시성(同時性)이 내재한다. “古를 今으로 바꾸는 일은 곧 今을 古로 바꾸는 것이며, 今을 古로 바꾸는 일은 곧 古를 今으로 바꾸는 것이다. 이러한 역동적 함수관계는 공간성에 있어서도 동일하게 성립하고 있었다.3)

 

 

 

Space 2021 130-2 IV corona, 130x130㎝, oil on canvas, 2021

 

◇대립을 껴안은 易理의 통합

이미 중국 춘추전국시대 공자학풍의 유가(儒家), 묵가, 순자 등에서 음양과 오행이 일체화되는 사상이 드러난다.

 

“또 한편으로 수행 중에서도 지혜의 닦음(慧行)을 건이라 부르고, 행동의 닦음(行行)을 곤이라 할 수 있다. 건곤은 실제적으로 선후가 없다. 예를 든다면, 이치와 지혜가 하나(理智一如)이고, 고요함과 비춤이 둘이 아니며(寂照不二), 본성과 닦음이 서로 간에 관통하고(性修交徹), 복과 지혜는 서로를 장엄 하는 것(福慧互嚴)이다.4)

 

그런데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秦)이 들어서면서 묵가학파는 사라진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마지막 통일왕조 청(淸,1616~1912) 때 고증학과 묵자가 주목받게 된다. 이 시기 조선의 추사 김정희는 청(淸)의 영향을 받아 금석학연구를 했고 ‘서울 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를 밝히게 되는 매우 흥미로운 역사의 흐름을 떠 올리게 한다.

 

 

 

Space 2022 50P IV corona,117x80㎝, oil on canvas, 2022

 

 

한편 기원전 중국사상가들에게서 발현하고 조선후기 실학(實學)에 이르기까지 또 한국현대미술의 토양으로 이어지는 동양철학의 대장정은 속도와 물질만능시대에 전통사상의 무게를 한 번 더 상기하게 한다.

 

가파른 절벽 위 뿌리내린 한그루 소나무의 쩍쩍 갈라진 표피. 이태현 화업은 거목뿌리를 뒤흔든 바람과 성난 파도가 충돌하는 대립의 공포를 껴안은 예지로 직선과 곡선 그리고 사선의 기록들을 새롭게 탄생시킨다.

 

그것은 역리(易理)를 통합하는 독창적 미학이자 한국미술의 정체성에 고뇌하는 후학들에게 현현(顯現)의 길잡이가 될 것이다. 땅 속에 물이 있고 바람이 땅위에 부는 육십사괘(六十四卦)가 스며든 이태현 화백(李泰,Lee Tae Hyun,이태현 작가)그림은 바로 뚝심의 혼(魂)과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1)추사 김정희(CHUSA KIM JEONG HUI,秋史 金正喜,1786~1856)詩, ‘추일만흥(秋日晩興)’중에서, 완당전집 제10권, 한국고전번역원, 신호열 譯, 1986.

2)栗谷(율곡)의 사상 李珥(이이,1536~1584), 윤재영 讀解, 書-答 朴和叔(이름은 淳. 乙亥年), p.135. 동서문화사 刊, 1978.

3)東洋學(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 도올 김용옥(檮杌 金容沃,1948~)著, 통나무刊, 1986.

4)=우익지욱(藕益智旭,1599~1655)지음, 周易禪解(주역선해), 제1권,重地坤卦, 彖傳에 대한 해석, 상게서, p.21./‘周易禪解’에 内在된 佛敎思想과 儒敎思想 硏究, 길봉준 東方大學院大學校, 2010/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글=권동철, 11월8일 2022년. 인사이트코리아 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