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의 발자취(年代記)

[1974~2022년, 전시로 본 통인화랑 역사-(40)]서양화가 이종만,이종만 작가,이종만 화백[TONG-IN Gallery Seoul]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22. 6. 19. 18:19

전시장에서 이종만 화백(가운데). 왼쪽이 김완규 통인가게주인. 통인화랑제공

 

생명력의 붓질화

 

 

이종만 작가는 주변에 있는 생명체를 그린다. 자신의 생활 반경 내에서 눈길을 주면 걸려드는 자연, 생명체를 재현하는 것이다. 새와 꽃 들이 그것이다. 대부분 꽃을 그린다. 그런데 아름다운 꽃을 의도적으로 선택하고 배치해서 그린 것이 아니라 길가에 혹은 집주변이나 공터에 또는 들판에 거칠게 핀 것들을 그 상태 그대로 그렸다. 흔하게 널려있는 것들이고 매우 비근한 식물들이다.

 

이종만이 그린 대상은 자연계에 속하는 것들이지만 집주변이나 삶의 언저리에 버려지듯 놓여진 것들이라는 인상이며 조금은 시들고 처진 것들이자 소멸의 직전에 겨우 멈춰서있다는 느낌도 준다. 있는 힘껏 활짝 폈다가 아쌀하게 저버리는 꽃의 한 순간이 절정처럼 매달려 있는 것이다. 자연계의 모든 생명체는 시간과 죽음의 고비를 피할 수 없다. 작가는 그렇게 조금씩 빛이 바래고 시들고 말라가며 기어이 사라져 갈 생명체의 어느 한 순간을 기억하고 기념하듯 그렸다.

 

 

화조, 130.3×97.0㎝ 캔버스에 유채, 2014

 

그가 그린 비둘기 역시 공해로 찌든 도시공간 안에서 버둥대며 몰려있는 모습이다. 그 모습은 아름답다기보다는 치열한 생존의 각축을, 목숨 달린 것들의 운명적인 생의 욕망을 다소 착잡하게 들여다보게 한다. 도시의 비둘기들은 고스란히 도시에 사는 현대인들의 생의 모습을 반영한다.

 

차갑고 더러운 아스팔트와 보도위에서 쓰레기를 쪼아대며 검은 연기를 마시며 사는 비둘기들은 비좁은 공간에 머리를 박고 몰려다닌다. 작가는 그런 모습에서 생의 역동성을 또한 본다.

 

 

비둘기, 162.2×130.3㎝ 캔버스에 유채, 2015

 

이종만 작가는 그런 대상에서 접한 자신의 감동을 최대한 회화 언어로 극화하고자 했다. 칠했다기 보다는 날렸다는 느낌이 드는 이 붓질은 순수한 붓질의 응집이었다가 특정 대상을 연상시키기를 반복하면서 유동한다. 구상과 추상 사이에서 진동하는 붓질이자 대상에서 출발해 그로부터 최대한 달아나는 그런 그림이다.

 

구상과 추상표현주의가 섞이고 특정 대상의 묘사와 재현적 욕망을 순간 지우고 내적 감정을 밀어 올리려는 의욕이 중첩된 그림이다. 아니 재현한다기 보다는 그 대상에 대한 정서적 느낌을 잡아채려 한다. 분명 구체적인 대상의 재현이면서도 그로부터 조금은 튕겨져 나가 급박한 붓질과 색채를 지닌 물감의 질료들이 상당히 분방하고 뜨겁게 맥박 치는 유형의 그림이다.

 

 

호박꽃, 72×61㎝ 캔버스에 유채, 2018

 

나로서는 이 표현적인 붓질에서 다분히 동양화 모필의 운용을 연상한다. 서체적인 붓질이자 대상의 내면을 시각화하기 위해 추출한 선이고 생명을 지니고 있고 시간의 지배를 받는 대상의 존재감을 표현하기 위해서 요구되는 붓질이다. 이종만(Artist Lee Jongman) 그림은 생명체를 물감이라는 질척한 매체로 형상화한다. 작가의 그림은 특정 대상을 안겨주지만 동시에 물감의 상태를 보여준다. 질료성 자체가 그림의 내용을 만든다. 꽃이고 새이지만 결국 붓질이다.

 

회화는 손에 의해서 만들어지는데 그 손은 몸과 분리될 수 없는 그런 손이다. 이종만 화백 그림 역시 선험적 질서에 의해 지배되는 눈이 아니라 욕망과 감정으로 뒤척이는 몸/손의 결과물인 것이다. <=박영택 경기대교수, 미술평론>

 

 

전시전경. 통인화랑제공

 

전시=‘꽃과 새-이종만, 523~6172018. 통인옥션갤러리(TONG-IN Auction Gallery)

 

권동철=6132022. 이코노믹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