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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황인혜의 작품세계-한국문화의 정통성과 문자추상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14. 6. 11. 21:04

 

The endless love

 

 

황인혜 작가의 작품 속에는 우리의 전통과 삶이 스며들어 있다. 조형적으로도 한국적 미감을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고 아름답다는 느낌을 준다. 우리에게는 전통 생활이 주었던 아름다운 기억이 있었다. 이제는 사라져가는 감을 주는 아쉬운 부분이다. 황인혜 작가는 풍부했던 그 우리의 문화적 유산을 작품 속에 해석하여 반영한다. 다양한 작품들을 상호 연계시켜내는 점도 살펴보아야 한다. 그의 작업반경은 수묵풍경에서부터 자연에서 추출해낸 반추상작업, 그리고 한글을 이용한 문자추상작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 모든 작품경향에 중심을 차지하는 것은 전통적 뿌리와 환경이다. 그 전통이 영감의 화수분이자 창작의 저장고인 셈이다. 그의 작품 속에는 시간의 흐름이 있고, 서정적 감성이 배어 있다. 따스하고 긍정적인 시선을 느끼게 만든다. 그의 사색은 일상의 삶에 감사함을 일깨운다. 차분하면서도 조형적인 그의 작품 속에서 진실 된 자아와 만나기 위한 수고도 발견 할 수 있다.

 

문자예술의 시작

미술가에게 있어서 유년기의 기억은 창작행위와 불가분의 관계에 놓인다. 작품과 늘 같이한다. 그 기억은 작품주제나 모티브를 설명해주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작업 전반에 걸쳐 반복적으로 드러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보자면 미술가의 작품은 자신의 경험 그 자체라 할 만하다. 황인혜 작가에게 있어서도 예외가 아닌데, 자신에게 주어졌던 내·외부적 환경적 요인이야말로 독자적인 작품을 형성케 한 주 요소다. 성장지의 특성과 가족 간의 연관성도 크다. 아름다운 시절이었음을 고백하는 작가에게 그러한 환경이 바로 스승이었다. 경북 대구 인근에서 출생한 그는 아름다운 정원과 사과나무와 소나무로 둘러싸인 곳에서 성장했다. 그의 부친은 서예 뿐만 아니라, 시와 그림에도 남다른 능력을 소유한 분이었다. 그러한 부친의 영향을 받은 것은 자연스런 일로서, 작가로서는 유년기부터 인문학적 분위기에서 성장하는 행운을 가지게 된 셈이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기회를 받아들이고 자기화하려는 태도다. 황인혜 작가는 자신에게 주어진 학습기회를 한껏 받아들였다. 필묵이라는 재료를 알게 되었고 그 속에 잠재된 예술적 가치를 발견했다. 작가의 눈과 인식의 폭이 넓어지는 계기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여기에서 작가는 동양 문화권에서 발견할 수 있는 회화적 근원을 만날 수 있었다. 이러한 여건 속에서 성장한 그의 작품에서는 지적 요소와 한국적 아름다움을 동시에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서예는 작업을 위한 기초이자 향후 전개될 예술 활동의 정신적 자양분이 되었다. 서울대 동양화과 재학 시, 국전 서예분야에서 입선을 한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는 글씨를 쓴다는 일반적인 행보를 따르지 않았다. 기법적인 측면이서나 문자 그 자체에 매달리기 보다는 확산된 조형적 시도를 선택했다. 다시 말하면 전통적 관점에서 벗어나 선과 선, 선과 면, 면과 면의 관계가 더 중요했다. 선의 장단, 면의 농담, 필압의 강약도 회화적 경계에서 이루어졌다. 이 때문에 그는 서예에서 발견할 수 없는 형상의 자유로움을 구사할 수 있었다. 황인혜 작가는 한국화가로서 정통적이고 모범적인 학습방식법을 체득했다. 먹에 대한 이해가 있었고 서예에 깃든 인문학적 수양의 과정을 거쳤다. 이번 예술의전당에서의 개인전에서는 40여년에 걸친 그의 양식변화를 찾아볼 수 있다.

 

 

수묵풍경과 시공(視空)

황인혜 작가가 본격적으로 화단에서 활동한 시기는 1980년대 초반부터다. 당시 작가의 관심사는 풍경이었다. 관념적인 산수가 아니라 우리 땅에서 마주할 수 있는 일상적 풍경이었다. 특히 서울이나 경기 지역을 대상으로 섬세하고 정치(精緻)한 필법을 구사했다. 산과 나무, 그리고 그 틈에 적절히 놓여있는 가옥들은 주변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대상들이었다. 그 가운데에서도 수평적 요소의 대지와 수직적 요소의 나무가 만들어내는 정감을 중시했다. 대체로 이 시기는 부드럽고 감수성 높은 붓의 움직임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부분적으로 작은 변화도 감지되는데, 사물에 대한 단순화작업과 여백에 대한 관심도 드러나기 시작한 때다.

여기에서 출발한 자연은 이제 보다 집중적인 연구의 대상이 되기 시작한다. 그는 보는문제에 눈뜨게 된다. 곧 자연에 대한 관점을 확산시키기 보다는 집중시켜나가는 방법을 찾아내었다. 특히 자연물이 연출하는 공간의 문제에 집중한다. 급기야 그는 시공(視空)’이야말로 한국화가 가지는 진수라는 믿음에 도달한다. 이 용어는 말 그대로 바라보는 사물과 그 틈새를 지칭한다. 구체적으로는 1985년을 전후하여 시작된 시공연작은 나뭇잎을 매개로 한 자연의 속성을 탐구한다. 그가 주목한 것은 나뭇잎 사이사이로 보이는 공간이다. 하늘과 잎사귀가 보여주는 소담스런 이야기다. 신비롭고도 놀라운 경험이었다. 우주의 질서도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작가 눈앞에 펼쳐진 작은 틈새에 있었다. 이러한 경외감의 표현, 그 오묘한 아름다움에 대한 관심이 7-8년간 지속된다. 이 시기에 보여준 그의 작업은 기존 수묵을 바탕으로 독특한 화면구성과 함께 풍부한 회화적 감성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서 미묘한 자연의 움직임이 다루어진다. 나뭇잎의 작은 떨림이 있고, 나뭇가지의 드러남과 감춤이 있다. 계절별로 달라지는 자연의 표정변화도 연구하였다. 시공연작에서는 그간 그가 다루었던 서예와 수묵의 영향이 극대화되어 나타나고 있다. 특히 나뭇잎이라는 단일 대상을 조형적으로 어떻게 다룰 수 있는가를 제시해보였다. 또한 섬세하고도 탄력 있는 붓의 율동으로 작가의 감수성을 잘 보여준 사례라 하겠다.

 

먹과 인체, 다시 문자추상으로

황인혜 작가는 1990년대에 접어들어 또 다른 변화를 맞게 된다. 다름 아닌 문자의 가능성을 되살펴보는 일이었다. 여기서 그는 문자·인물·추상풍경을 한 화면에 배치한다든지 다양한 형태의 화면분할을 시도하게 된다. 1993년작 <무제>를 비롯한 일련의 작업에서는 이전의 작업방식과 구별 짓는다. 인체와 한글추상이 함께 하고, 자연의 산물인 꽃과 나무도 여기에 동참한다. 인체와 문자, 그리고 추상이미지 이 세 관계는 화면의 주된 구성방식으로 발전해갔다. 문자추상에 본격적인 관심을 드러내는 시기이기도 했다. 그의 문자추상은 선과 면의 틈새에서 발생하는 조형적 즐거움을 준다. <가나다라>연작은 필묵의 용법과 문자가 주는 추상적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대표적인 경우로, 한글의 미적요소를 최대한 이끌어내려 했다. 자음과 모음이 형성한 리듬과 규칙, 글자사이에서 생성되는 공간은 무한한 상상의 여지를 작가에게 부여했다.

문자에 대한 관심은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뒤돌아보면 문자에 도달하게 된 것도 초기에 만난 서예와도 관련이 깊다. 한자의 조형성을 넘어 한글이 갖는 아름다움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1995년 독일 베를린기술박물관에서 개최한 <문자의 역사전>에 초대받은 작품도 문자작품이었다. 그의 방식은 한글을 새롭게 배치하여 보여주는 일이다. 단순한 재배치에 그치지 않고 여러 가지 형태미를 추구했다. 수묵채색이 가진 전통적 미감을 항상 중심에 두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형태와 내용으로 나타날 수 있다. 그 가운데 화면의 구성방식에 대한 황인혜 작가의 관심은 특별하다. 목탄을 이용하여 흔적을 의도적으로 남기는 것도 한지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자연스러운 드로잉도 유심히 살펴볼만하다. 한글의 배치와 수묵, 그리고 자유로운 선의 하모니는 구성의 아름다움과 독특한 회화적 뉘앙스를 전달한다.

 

매듭

황인혜 작가가 사용하는 한지는 우리 전통을 말해주는 또 하나의 매체다. 특히 그에게 있어서 한지는 일상용품이었으며, 조형적 관점에서도 가능성이 풍부한 소재였다. 부드러우면서도 질기며 독특한 텍스쳐를 가진 한지는 그 자체로도 훌륭한 오브제다. 한지는 우리의 전통가옥의 창호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재료였다. 창호지에 손가락을 넣어 동그랗게 구멍을 만들어 보이고 했던 시절이 있었다. 황인혜 작가 역시 그러한 기억을 소중하게 추억한다. 1990년대 후반부터 황인혜 작가는 내용적으로 보다 풍성한 장치를 덧붙인다. 바로 작가 본인의 기억 속에서 이끌어낸 한지의 경험을 화면에 도입하게 된 사실이다. 한지를 꼬아 매듭을 만들었는데 그 매듭단추는 감상자로 하여금 여러 가지 연상을 불러일으킨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매듭 줄과 단추에 대한 접근방법이다. 단추가 작가의 감상적인 기억 속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작품에 적절한 형태로 활용되었다는 사실이다. 색으로 처리된 매듭은 안료 덩어리 혹은 입방체 자체로도 접근할 수 있다. 추상적으로 보자면 문자일수도 있으며, 선과 면의 조화나 비례 사이에 놓이는 중간매체이기도 하다. 이 매재는 개별성과 독립성을 유지하면서도 드로잉과 문자, 수묵채색 사이에서 관계를 이어주는 절충적 의미를 주기도 한다.

1998년 작 <가나다라>는 먹을 이용한 수묵추상의 선율을 보여준다. 그 속에 놓여 있는 매듭은 작가의 정신 속에 깃든 정서적인 연결고리다. 매듭 메는 방법을 가르쳐준 작가 모친의 눈길과 손길이 여기에 모아진다. 그 매듭은 인간사의 관계를 이어주는 아름다움의 상징이다. 외견상 하나의 오브제로 기능하지만 작가는 여기에 남다른 의미를 부여했다. 바로 사람간의 관계를 넘어 창조주와의 관계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그의 매듭은 인류와 절대자를 결합하고 엮어준다. 양자를 이어주는 사다리이기도 하다. 작가 개인의 사적인 의미에서 시작된 이 매체는 인류의 보편적인 사랑으로 그는 발전시켜 나가고자 했다.

2000년대에 접어들어 황인혜 작가의 매듭은 수묵과 함께 활기찬 모습으로 등장한다. 다소 수줍던 모습에서 벗어나 자신감을 찾아 간다. 오히려 조형의 주체적인 위치로 올라선 모습이다. 먹과 채색, 목탄과 매듭 간의 재료적 관계가 <그지없는 사랑 The Endless Love> 연작과 만나는 시기도 이 즈음이다. 그는 경험이 예술적 감수성과 만날 때 얻을 수 있는 부가가치를 보여준다. 우리의 생활문화에서 늘 같이 했던 여백미·공간미·구성미라는 요소들을 재발견한다. 이러한 요소들은 실상 우리 사회가 급격히 현대화 과정을 가로지르면서 잊혀져가는 소중한 기억들이다. 황인혜 작가는 바로 이러한 요소들을 자신의 작업에서 복원해내고 있다.

 

문자를 통한 통합적 시각

황인혜 작가의 작품에는 간결한 색조가 주는 시각적 편안함이 있다. 창조주가 선사한 자연과 인류가 고안한 최고의 산물인 문자 사이에서 그는 부드럽게 유영한다. 작품 속에 간직하고 있는 추상적 아름다움이 있는데,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가져다준다. 그리 낯설지 않는 색조와 공간구획, 일상에서 접하는 문자의 조합이 그 핵심이다.

그의 최근작에서는 문자추상을 중심으로 하되 보다 종합적인 제작 성향을 보이고 있다. 인물, 풍경, 문자추상 등을 구태여 구분하지 않고 하나의 작업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2010, 덴마크에서 열었던 갤러리 넥서스 쿤스트센터(Galleri Nexus Kunstcenter) 초대개인전은 그 특징을 잘 보여주었다. 이 전시는 그가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를 집약한다. 한지의 특성을 잘 이용한 순수 추상회화, 추상과 구상의 자유로운 조합, 한지를 오브제로 이용한 입체적인 작업, 한글의 자모음을 기초로 한 인물의 단순화작업 등이 전시작품의 사례다. 더욱이 종이 매듭을 만들어 작품 요소요소에 배치한 것도 감각적이었다.

 

예술작품의 진정한 주제는 예술가 자신이라고 한다. 어떠한 소재나 내용으로 작품을 다루더라도 결국 그 작가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흙과 나무에서 자연을 배우고 문살과 한지에서 매체를 발견했다. ()이 어떤 세계를 열어 보여줄 수 있는 지도 비교적 일찍 깨우쳤다.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이 매우 소중하며 그 중심에는 사랑이 깊이 개입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잊지 않는다. 작가에게는 이같이 따스하고 넉넉한 요소들이 있었다. 이로 말미암아 그는 조형적 사유를 보다 풍성하게 발전시켜나갈 수 있었다.

황인혜 작가의 작업 요체는 문자의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다루었다는 점이다. 한글 고유의 아름다움과 형태를 이용한 조형적 실험은 그만의 개성이라 할만하다. 이러한 성과의 뒷면에는 전통이라는 뿌리와 연결된 삶의 경험이 바탕이 되었다. 우리 문화를 재발견하려는 진취적인 자세와도 연계되어 있다. 그는 작은 경험일지언정 크고 깊게 받아들이고자 했다. 부분적인 요소라도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예술작품으로 확장해내었다. 이러한 태도가 모여 황인혜 작가의 정체성을 만든다. 이 점에서 이 다양한 형태의 조형작업은 곧 그의 자화상이라 할만하다.

 

 

=감윤조(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