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져가는 넓이 또 다른 만남의 기다림
“이윽고 점심을 마치면 사람들은 소나기가 쏟아지는 날이라도, 여우볕이 들기를 기다렸다가 소나기 뒤의 반짝이는 햇빛 속으로 외출한다. 18세기에 사랑받던 나무의 ‘아름다움’을 울타리 바로 앞에서부터 뽐내는 100살인 너도밤나무들의 울퉁불퉁 우람한 마디부터 작은 떨기나무 덤불에 걸쳐 빛의 줄무늬를 긋고, 작은 떨기나무는 그 늘어진 가지들 속에 꽃피는 움 같이 빗방울을 방울방울 짓더란다.<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À LA RECHERCHE DU TEMPS PERDU),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 著, 민희식 옮김, 동서문화사刊>”
가장 소박한 형식의 고백을 귀환(歸還)이라 했던가. 필연과 우연의 메모로 가득한 이정표(étape). 왜소한 눈동자의 중년이 서성인다. 높은 하늘엔 뭉게구름이 미묘한 웃음기(氣)로 흘러가고 황홀함을 껴안은 채 풍선처럼 부풀은 꽃잎이 팔랑거리며 사라진다.
싱그럽고 달큼한 향기 속으로 피아니스트 니콜라스 스타비 연주, 가브리엘 포레(Fauré) 곡 ‘3개의 무언가’선율이 여행자의 긴 그림자 위로 드리워진다. 오렌지색 황혼에 드러나는 빛바랜(Faded) 엽서의 문장들이 석별의 인사처럼 바닥 깊은 샴페인 잔으로 뛰어 들었다. 저 먼 성당종소리 가늘게 들리고 산등성이 따라 피어난 노란 미모사 꽃들의 행렬 속으로….
◇그 아득한 마음의 색깔
캔버스에 전체적으로 색을 깔아놓고 그 위 유화나이프로 한 땀 한 땀 물감을 올린다. 화면엔 남겨진 색들이 보일 뿐 흐르는 강물처럼 아래의 흔적은 아스라한 시간의 찰나로 지워져 간다. 그러나 경이로운 봄꽃이 탄생하듯, 어느 날 연민의 이름으로 무의식의 지평이 떠오를 때가 있는 것처럼 그곳엔 기억 혹은 아픔으로 각인 된 그 무엇이 내재되어 있다.
화면의 복잡한 덩어리는 삶의 터이다. 우리 삶 속에 현존(現存)하는 무수한 대상들처럼 그 안에는 규약이나 제도 혹은 억압이 있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곳엔 작가가 맨 마지막 방점으로 그려 넣은, 새로운 삶의 메신저 같은 이정표와 벤치가 있다.
이정표 안에는 사랑, 러브, 아무르, 뉴턴금지, 느낌표 등 작가가 그려 넣은 여행의 방향성, 주어진 약속 같은 것이 새겨져 있다. 벤치엔 휴식, 기다림, 또 다른 만남, 떠나고 없음의 부재, 등 잊어지는 지워져 가는 인생여행의 의미망들이 존재한다.
이번 초대전은 서울종로 운현궁SK허브 지하1층 갤러리 바움(Gallery BAUM)에서 3월30일 오픈, 4월16일까지 성황리 전시 중이다. 전시장에서 작가를 만났다. “나의 작업 ‘어떤여행’시리즈는 멀리 떠나는 것을 이야기 하는데, 일상이 곧 여행이며 여행이 곧 일상인 그러한 다양한 담론들을 응축미학으로 담아내려 했다.
‘풍경’연작은 언젠가 보았던 스쳐지나간 버려진 풍경 혹은 최초의 풍경일 수도 있다. 바람과 짐승들이 길을 열었고 마치 태초의 풍경이 늘 우리 옆에 있다는 상상으로 작업한다. 여행의 끝에서 혹은 시작에서 바라본 풍경으로 해석해도 좋다.”
권영범 작가(Painter KWEON YOUNG BUM)는 1993년 도불, 프랑스 랭스국립미술학교 회화전공 졸업(Wcole des Besux-Arts de Reims France (D.N.A.P)했다. 2001년 귀국하여 경기도 김포 대곶면에서 작업하고 있다. 개인전 42회 및 단체전 200여회 참여했다. 한편 4월7일부터 10일까지 부산 벡스코(BEXCO)에서 열리는 ‘2022 BAMA 제11회 부산국제화랑아트페어’에 출품한다.
△권동철=4월6일 2022, 이코노믹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