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 사랑과 영혼에 관한 질문
“과학은 어떤 지식의 몸체에 기대어 게으르게 휴식을 취하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과학은 쉬지 않는 노력을 의미하며, 시적인 영감으로나 이해할 수 있을까. 지성으로써는 결코 완전히 파악할 수 없는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진행되는 발전을 뜻한다.”<과학적 신념은 어디에서 오는가, 막스 플랑크(Dr. Max Planck)지음, 이정호 옮김, 전파과학사刊>
무엇의 동경(憧憬)인가. 외경을 품은 그러나 텅 빈, 부드럽고 고요한 눈동자에 맑은 빛이 감돈다. 화면은 자연과 인간의 물아일체 그 형상으로 인도하는 느슨한 경계를 드러낸다. 자유롭게 살아가는 모습으로 비춰지는 새떼에서 영감을 얻어 다양한 포즈로 표현한 인간의 ‘숲’과 ‘동행’처럼 꽃을 연결하기도 한다.
이상과 현실 사이를 어우러져 오가며, 하나 되어 사유를 확대하고 공감하는 문에 들어서면 신(神)과 사랑과 영혼의 질문으로 채색된, ‘본디 인간의 마음이 선하다’는 묘사의 그림과 조우하게 된다. 우주와 인간의 ‘창조적 진화’를 설파한 앙리 베르그송(Henri Bergson), 유기적 연결파동의 양자론(quantum theory)처럼 조화롭게 살아가고자 하는 상생의 이치를 내포하고 있는 작품은 분별하는 마음이 사라지고 조화를 이룬 세계로 결합하며 조율한다.
◇선함에 대한 따스한 통찰
저 심연의 아득한 기억에서 끌어 올린 한 송이 꽃인가. 숲길에 난 자그마한 도랑 곁에 한들거리는 빨간 야생화…. 태음(太陰)이 드높은 하늘과 광활한 대지에 드리우듯, 소우주의 인간머릿속에 대우주가 다 들어가는 그 신비의 존재를 어울림이라는 합(合)의 문답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생성과 소멸의 삼라만상, 윤회의 우주상(像)과 깊은 관련성을 맺는 임종두 작품세계는 그러한 일체로서 무아(無我)를 은유하고 생명을 잉태하는 존재자를 통해 자연계와 공존하는 자아의 참모습을 일으킨다. 그것이 작가가 관조하는 존재의 존귀함에 대한 질문으로서 인간의 선함에 대한 따스한 통찰이자 동시에 꽃도 화장하고 향수를 뿌려야 하는 물질만능 무한경쟁시대에 심성의 본바탕을 역설하는 미학이기도 하다.
재료적인 면에선 ‘그림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에서 반영구적인 거의 불변색에 가까운 석채를 쓴다. 채색도 바탕서부터 마무리까지 서른 번 정도를 올리고 말리고하는 과정을 거치는데, 이러한 몸과 마음의 수련을 통한 중첩은 그 작품만의 고유한 색채로 거듭난다.
화면의 주조색은 적자지심(赤子之心)의 빛깔이다. 애를 낳으면 천진난만하게 붉게 태어나는 순진무구의 색으로 군자의 마음이 그러하다했던가. 엄동설한 얼어붙은 땅이 녹고 부드러운 대지의 살결 속에서 발아하는 춘파(春播)가 그렇게 발육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임종두 작가는 “생명의 고유한 가치를 인정하는 태도와 살아있는 것에 대한 연민, 동정하는 마음은 인간의 놀라운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타자와의 감응은 분별적인 상대세계를 없애주기도 하고, 경이로운 우주 자연의 섭리를 되새기면서 공존의 지혜를 얻기도 한다.”라고 작업의미를 부여했다.
△글=권동철, 인사이트코리아 2020년 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