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한국]지면기사

서양화가 이인섭,금호미술관,돈화문갤러리,이상국 詩,서울미협,이인섭 작가,양양군 현북면,어성전(漁城田),李仁燮,이인섭 화백,ARTIST LEE IN SEOB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19. 3. 12. 00:56

  이인섭(李仁燮)화백 <사진=권동철>



자연 안에 파묻힌

 

장에서 돌아온 어머니가 나에게 젖을 물리고 산그늘을 바라본다/가도 가도 그곳인데 나는 냇물처럼 멀리 왔다/해 지고 어두우면 큰 소리로 부르던 나의 노래들/나는 늘 다른 세상으로 가고자 했으나/닿을 수 없는 내 안의 어느 곳에서 기러기처럼 살았다/살다가 외로우면 산그늘을 바라보았다.”<이상국 시집 뿔을 적시며산그늘’, 창비 >

 

나뭇잎의 흔들림, 잔돌들이 굴어가는 리듬의 여운, 산을 휘감아 돌아가는 강물의 겸손한 인사법, 새떼들이 비행하며 공기를 가르는 소리. 화면엔 각양각색 저마다 흥겨운 움직임들의 오묘한 기운의 울림이 흐른다.

 

고요하지만 역동적 운치를 통해 우러나오는 웅혼한 대자연계와의 소통은 끊임없는 모티브를 선사한다. 밑 작업의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막상 그릴 때는, 일순간에 우주를 포옹하는 꽃봉오리의 만개처럼 감정의 응집을 찰나의 몰입으로 풀어낸다.

 

작가는 지금껏 기하학적인 그림을 그린 적이 없다. 이번신작 역시 그냥 자연에 들어가기도 하고 멀리서 바라보기도 하는 등 산새들이 들꽃과 바람이 화풍에 고스란히 스며들었다.

 

모든 것이 정적에 휩싸이고 어떤 목적도 추구되지 않을 그때 비로써 참과 벗하게 된다. 아무런 조건 없는 만물의 절대적 자유 그 순환의 동시성을 통한 시각적 형상화, 나는 그것을 공유하고 싶다,”


 

162.2×130.3



소쩍새 우는 심심산골

이인섭 작가는 홍익대학교 및 동대학원 회화과 졸업했다. 예총문화예술상, 8회 대한민국미술인의 날 미술문화공로상을 수상했다. 현재 ()서울미술협회이사장이다. 1989년 무역센터현대미술관, 91년 샘화랑을 비롯하여 예술의 전당, MAC2000(파리, 프랑스), 이목화랑, 조선일보미술관(2013~2017) 등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그동안 묵시의 땅’, ‘생성의 정원’, ‘사계:시리즈를 꾸준하게 발표해왔다. 2년여 동안 작업해 온 대표작들로 비구상작업을 선보이는 이번 스물아홉 번째 ‘From Nature’개인전은 지난 228일 오픈하여 310일까지 서울시 종로구 삼청로, 금호미술관 2~34개 전시실에서 30여점을 전시 중에 있다. 36일부터 19일까지 종로구 돈화문로, 돈화문갤러리 개관기념 이인섭 초대전도 성황리에 진행되고 있다.

 


From Nature, 193.9×130.3Mixed media, 2019



나의 아버님은 개성, 어머님은 평양분이시다. 나는 부산피난길에서 1952년 출생했는데 수복 후 올라와 서울관수동과 명륜동에서 자랐다. 방학 때가되면 고향 간다는 친구들이 무척 부러웠었다.”

 

그래서였을까. 화백이 70년대 초 강원도가 고향인 친구네를 찾아갔는데 목재사업을 하고 있어서 그것을 수송하는 차를 타고 들어가게 된 곳이 현재 작업실이 있는 양양군 현북면 어성전(漁城田) 계곡인근이었다고 한다.

 

당시는 버스도 없이 화전민마을이 있는 첩첩의 산속이었다. 기가 막힌 너와집과 주변풍광에 마음을 빼앗겨 고향 같다는 생각으로 가슴에 품고 있었다. 마침 80년대 중반, 시골집이 하나 나와 있어서 바로 매입해 작업실로 만들어 들어가게 된 것이다. 창문만 열어 놓아도 소쩍새 우는 심심산골이다. 자연과 내가 경계를 허문 채 벗하며 작업하고 있다.”

 

한편 화업50년 화백에게 화가의 길에 대한 소회를 물어보았다. “나는 고뇌와 번뇌를 껴안는 스타일이 아니다. 스스로 애주가이고 즐겁게 작업하는 일상이다. 하여 자연 속에서 무위(無爲)의 마음으로 행복하게 그렸으니 나의 그림을 보고 그런 서정을 함께했으면 좋겠다.”

 

권동철 미술전문기자/주간한국 20193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