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한국]지면기사

[ARTIST YUN JONG]서양화가 윤종,Neo-Babylonia,윤종 작가,희수갤러리,Heesu Gallery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18. 10. 24. 18:36


Neo-Babylonia, 112×162.2(each) oil on canvas, 2018



환상과 기억 마음의 조율

 

신화적인 인간은 그 너머로 나가기를 갈망하지만 학문적인 책임을 고려하는 인간은 그것을 허락할 수 없다. 이성의 차원에서는 신화화야말로 쓸모없는 사변일 뿐이다. 하지만 감정의 차원에서는 치유를 가져오는 활동력이며 인간존재에 광채를 부여한다. 사람들은 그 광채를 놓치고 싶어 하지 않는다.”<카를 융-기억 꿈 사랑, 카를 구스타프 융 자서전, A.야페 편집, 조성기 옮김, 김영사 >

 

해풍에 휘어진 야자수한그루가 눈부신 애메랄드빛 수면에 생생한 잎사귀를 드리우며 나풀거리는 저 강인한 생명의 근원은 무엇인가. 고성(古城)의 시계탑, 물 위에 떠 있는 작은 배를 바라보다 항구의 재즈카페서 들려오는 사랑과 이별노래, 긴 세월의 발자국을 차곡차곡 쌓은 듯 고불고불한 길.

 

화면은 고대 바빌로니아 땅에 자동차와 선박, 통신망 등 현대문명이 복합적으로 구성된 조화로움을 선사한다. 차가우면서도 이지적 분위기의 따뜻한 감정이 혼재하는 도시의 재미난 이야기들이 종합선물세트같이 충만감의 일상으로 펼쳐진다.

 

그런가하면 유년시절의 산동네가 하나 둘 사라지고 거대한 몸짓의 건축물들이 올라가고 있는 뚝방촌과 아파트,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기설기한 지붕의 24번지는 여전히 잔존하고 있다. 누군가에게 그곳은 어떤 것으로도 가늠되거나 지울 수 없는 가슴 깊숙이 자리한 기억의 문일 것이리.

 

꿈과 환상을 오가던 뒤죽박죽 동화 속 앨리스는 여전히 현재도 이어지고 있다. 오늘날 변화무상한 도시화 속에 그 환영이 스며있다는 것에 놀랍기도 한편으론 위안이 되기도 한다. 현실은 무겁고 도시라는 이름의 고독과 소통의 부재라는 옷자락이 무력하게 허공에서 흔들리던 청춘도 있었다. 하지만 희열과 좌절의 균형, 고대와 현대의 경계 그러한 것을 통해 인간의 삶 자체가 따뜻하고 숭고하다는 것을 나의 작업에서 조율하고 싶었다.”

 


뚝방촌과 아파트, 90.8×116.8



치유 그 이상을 찾는 여정

오일 페인팅을 오랜 시간 말려가면서 긴 호흡의 중첩을 통해 마티에르효과를 드러내는 화면이다. 흐릿한 기억 혹은 언젠가 꿈속에서 마주했던 길목에 서 있는 를 만나는 듯 또한 예나 지금이나 산다는 것이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말하려는 듯 면면한 인간의 생애 그 지속성이 작품세계 저변에 흐른다.

 

윤 작가의 회화에서 느껴오는 것은 존재의 내면의식들이 샘물처럼 청량한 명징(明徵)의 현재성으로 눈앞에 펼쳐진다는 점이다. 현존과 옛날이 공존하는 융합플롯(plot)을 화폭에 드러냄으로써 작품명제 네오-바빌로니아가 암시하듯 하나의 세계로 인식되어 진다. 물론 그것은 관람자의 기억, 환상, 상처 등 무의식과의 교감과 다름이 없다.

 


                윤종 작가



이번 윤종 작가의 열 번째 ‘Neo-Babylonia’초대개인전은 신작 20여점을 선보이며 1031일부터 1113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희수갤러리에서 열린다.

 

한편 화가의 길에 대한 생각을 청했다. “힘든 길이다. 처음에는 사실 막연하게 나를 위해서 그렸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세월이 지나면서 지금은 치유 너머 그 이상의 것을 찾기 위한 여정을 가고 있는 듯하다. 이것을 함으로써 고독과 외로움이 점점 더 짙어가지만 그게 싫지는 않다. 그림을 꼭 해야 하는 이유가 그 속에 있는 것 같다.”

 

권동철 미술전문기자/주간한국 201810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