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한국]지면기사

[세조(世祖)어진 초본]국립고궁박물관,10월22~2019년1월13일,이당 김은호,以堂 金殷鎬,이구열 화단일경-이당선생의 생애와 예술,동양출판사1968,李龜烈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18. 10. 31. 18:54


세조 어진 초본. 1935년 기존 세조 어진을 모사하기 위한 기초 작업으로 김은호가 그린 밑그림. 우측 하단에 김은호의 인장이 찍혀 있다. <사진=국립고궁박물관>



추로(두루미와 해오라기)는 배부르게 나는데, 뜰 국화는 서리를 업신여긴다. 아침 햇빛은 해동(海東)을 비치고, 거북과 고기는 창랑(滄浪)에서 뛴다. 꿈 깨자 일어나 나라를 경영하니, 잠자는 사람은 깊은 방에 누웠다.”<세조 비빙가(飛氷歌), 조선왕 시크릿 파일 , 박영규 지음, 옥당북스 >

 

조선 제7대 국왕 세조(1417~1468)는 세종의 둘째 아들로 이름은 유다. 계유정난으로 조카 단종을 밀어냄으로써 도덕성과 명분이 결여된 권력 장악이라는 비판적 인식과 재위 13년 동안 왕권과 국방을 강화하고 경국대전이라는 법전편찬을 시작했다는 점에서 긍정평가가 함께 한다.

 

또 불교를 옹호하여 간경도감을 설치, 그곳에서 나오는 한글번역불경은 세조가 직접 번역하거나 토를 단 경우가 많다. 오늘날 훈민정음 반포직후의 국어를 반영하는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김은호가 원의효전(元懿孝殿)에서 세조 어진을 그리는 사진. 李龜烈 畵壇一境-以堂先生生珪藝術(이구열 화단일경-이당선생의 생애와 예술, 동양출판사, 1968)<사진=국립고궁박물관>



1735년 모사본 옮겨 그린 초본

예종은 나라를 다시 세운 공을 인정하여 신주를 종묘에 모실 때 묘호(廟號)세조(世祖)’를 올렸다. 세조의 첫 기일을 앞두고 예종은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 광릉에 능을 지키는 사찰인 봉선사(고려 광종 때 창건)를 두고 그 옆에 진전(眞殿)을 세워 세조 어진(御眞, 왕의 초상) 한 점을 봉안했다.

 

이 어진은 임진왜란과 두 차례 호란에서 극적으로 살아남는다. 1637년 병자호란을 피해 땅에 묻어 숨기면서 생긴 찢어진 부분에 대한 보수작업을 진행했고 그 후에도 몇 차례 손상부분보수가 이뤄졌다. 1735(영조 11) 그림이 희미해지자 모사본을 제작한다. 이후 원본과 모사본을 함께 보관했으나 1872년에 원본을 세초(洗草,그림을 물로 씻어 냄)하여 1735년의 모사본만이 남았다.

 

일제강점기인 1935년에 이왕직(李王職)은 세조와 원종 어진의 모사를 결정하고 이당 김은호(以堂 金殷鎬, 1892~1979)가 세조어진의 초안을 베껴 그린 후 비단에 옮겨 그리는 작업을 진행했다. ‘세조 어진 초본은 김은호가 1735년의 세조 어진 모사본을 옮겨 그린 초본이다.

 


손명희(孫明嬉)/국립고궁박물관 전시홍보과 학예연구관.



한편 전시개막일 오전임에도 관람객들이 속속 입장했다. 이번전시는 3호선 경복궁역과 연결,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관장 지병목) 지하1층 궁중서화실에서 1022일부터 2019113일까지 세조 어진 초본최초공개와 함께 약30여점의 유물과 사진, 영상을 소개한다.

 

손명희 학예연구관은 양면적 평가를 받는 세조를 입체적으로 조명해 볼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세조 어진이 모셔진 진전에 후대 왕들이 친행하여 제향 했던 점도 조명해 보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팀원들과 관련유물을 모으고 내용을 만드는 과정에 어려움도 있었지만 세조라는 인물테마의 전시를 마련했다는 점에 뿌듯함을 느낀다.”라고 밝혔다.

 

=권동철 미술전문기자/주간한국 201810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