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한국]지면기사

[畫家 車明熹]ARTIST CHA MYUNG HI,아트센터 화이트블럭(화가 차명희,무채색작가,차명희 작가,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슈만 작품129)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17. 10. 10. 15:29


(왼쪽부터)봄의 시작, 생성의 숲, 227×182(each) charcoal, acrylic on canvas, 2017




무아의 선 그 시원의 숨소리

 

 

다 그렇게 살다 갔을거야/응어리 삼키는 강가 구름 한 점 내 마음 한 점/한 점 점만큼 줄어 든 영혼 펴보면 갈청같이 엷을거야/찢어지겠지”<박경리 , 感性, 우리들의 시간, 나남 >

 

 

바람의 집은, 숲일 것이다.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다는 그 존재가 나뭇잎을 흔든다. 언덕을 넘어서면 굽이굽이 흐르는 강물 어디선가 우르르 물새들이 몰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제 그림자를 안고 얕은 물줄기를 들여다보며 먹이를 찾느라 분주한 긴 다리의 새때들. 물의 사랑이 숙연하게 노을을 껴안고 있었다. 단풍 물드는 오솔길에서 소망의 노래와 마주한다.

 

가슴 저민 상처를 달래는 또 다른 떨림. 조금씩 아늑한 수림의 안식으로 천천히 따라가다 패엽경(貝葉經)처럼 개옻나무 잎에 빼곡하게 써내려간 편지글이 가볍게 휘날리는 것을 목도한다.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Mstislav Rostropovich)가 연주한 슈만 첼로 협주곡 A단조 작품129’가 초저녁 어둠에 방황하다 내 가슴을 훑고, 박혔다.

    



(왼쪽부터)여름날을 기억하며, 숲으로 가다, 227×182(each) charcoal, acrylic on canvas, 2017




화면은 스침처럼 찰나에 감응하는 경쾌한 속도감으로도 광대한 우주를 껴안는다. 선과 무채색하모니가 빚는 시원의 대지와 바다. 그 안으로 작가의 숨결이 녹아든 무아의 몰입은 자연으로의 회귀와 다름 아니다. 억겁흔적 켜켜이 쌓인 퇴적 숲을 부유하는 저 씨앗이 육과 혼이 쓰는 날것 시편에 내려앉아 발아를 꿈꾼다.

 

속도감을 본능적으로 좋아하는 것 같다. 캔버스에 목탄으로 선()작업을 하면 약간의 노하우가 전제되지만 선을 두고 보면서 연속성을 유지할 수 있다. 목탄은 원하는 대로 강약조절하기가 수월하고 레이어의 깊이감 등 나의 감각과 충분히 잘 맞다. 특별히 명암이 아니더라도 선으로도 내가 원하는 바를 충분히 체현하는 것은 오랜 방법적 탐구와 더불어 획득한 새로움이다.”

    



                편지가 된 나뭇잎, 162×130


 


단순함, 그럴 수 있다면 누구나 좋을 듯

작가는 1983년 그로리치 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가졌고 2000년 금호미술관 전시에서 처음 목탄을 운용하여 무채색 작가로 알려지게 된다. “친분이 두터웠던 사랑하는 아우가 그즈음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흐르는 물처럼 우울함이 밀려들었다. 한참 후에야 무상한 독백시간이 지나간 자리에 움트는 무엇이 전해왔다. 그렇게 내 마음의 소리를 무채색으로 표현했다. 어느덧 세월이 흐르고 보니 무채색을 하지 않으면 어떤 의무감이랄까, 배반감이 먼저 떠오르게 된다.”     




  차명희(車明熹)작가



               

차명희 작가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및 동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 졸업했다. 동산방 갤러리, 금호미술관, 금산갤러리, 오사카 부립 현대미술센터 등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올봄 스스로 다짐한 바가 있었다. 나무와 꽃가꾸기를 좋아하는데 가을전시계획을 세워놓고 그림그리기에 충실하려 정원엔 나가지 않아야지 했다. 그런데 새싹을 본 순간 단숨에 마음이 빼앗겨 그 선들이 꼬물꼬물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래서 작업 중이던 것을 위에서부터 검은 색으로 지우다보니 화면이 너무 좋았다. 그렇게 다시 비우면서 작품이 완성되어 갔다.”

 

한편 이번 숲으로 가다개인전은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헤이리마을길, 아트센터 화이트블럭에서 916일부터 1112일까지 열린다. 전시장에서 장시간 인터뷰한 화업 40년이 넘은 작가에게 화가의 길에 대한 고견을 청했다. “돌아보니 단순하게 산 것 같다. 그림을 위해 다른 것을 접은 것이 많았고 그런 과정에서 살짝 억울한 점도 있었으나 돌아보니 인생이 그랬기 때문에 좋았던 것 같다. 하여 그럴 수 있다면 누구나 좋을 것 같다.”

    

 

권동철 미술전문기자/주간한국 2017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