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한국]지면기사

[ARTIST OH CHI GYUN]서양화가 오치균, 노화랑(오치균 작가,La Strada,바다의 협주곡,Le Concerto De La Mer,산타페,Santa Fe, 오치균 화백)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17. 10. 5. 19:42


Central park, 130×194, 2017




저 노을과 불빛에 부닥치는 여정!

 

 

 

자동차 굉음 속 도시고속도로 갓길을 누런 개 한 마리가 끝없이 따라가고 있다/살아 돌아갈 수 있을까/말린 꼬리 밑으로 비치는 그의 붉은 항문”<김사인 귀가, 가만히 좋아하는, 창비 >

 

 

저 길 넘어서면 푸른 바다 나올까? 저무는 노을에 손짓하는 바람은 검푸른 허공을 맴돌다 매혹의 곱슬머리마냥 부풀어 오른 레몬트리 나뭇잎에 내일의 이름표를 걸어놓았네. 흑백필름에 깔리는 트럼펫 선율의 애잔한 고독이 찬 공기를 가르는 안소니 퀸 주연 이태리영화 길(La Strada). 흰머리사내의 너울거리는 헤진 코트가 거칠게 해풍에 휘날리듯 트럼펫터 쟝 클로드 보렐리 바다의 협주곡(Le Concerto De La Mer)이 숙명의 비애감을 껴안고 거친 파도위에 부서지듯 그림위에 번진다.

 

전시테마 로드 무비(ROAD MOVIE)’는 눈길을 사로잡는 화려한 소재와는 다소 거리가 있음에도 길은 누구나가 걸어가고 달리며 그곳에 기대어 생을 살아간다는 점에서 동등함을 부여하는 공간임을 상기시킨다. 다채로운 색채의 두터운 마티에르가 융화해낸 노정에 뿌려진 지난한 삶의 질곡들 그리고 오랜 시간 작가의 몸이 체득한 손끝에 모아진 생생한 촉각성이 깊게 교감하는 정경으로 관람자의 심상을 일순간에 흔들어 놓는다.

    



Santa Fe, 112×168, 1996




바로 그 지점이 오치균 회화의 힘일 것이다. “그동안 연대기적인 전시를 했다면 이번엔 여정을 중심에 두고 총체적인 그림을 보여주고자 했다. 상업성을 배재하고 여러 작업층위들이 연관되어 묻혀 있던 나만의 작품세계를 조명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보고자 한다. 신작 뉴욕센트럴파크는 초가을 초록단풍이 보이는 구불구불한 나무줄기너머 빌딩 숲이 언뜻 보이는, 찰나다. 전체적으로 형태를 알아볼 수 있게 하는 것 보다 강한 마티에르 색감의 추상적 풍경작업들을 하고 있다. 하여 순수하게 뿌려진 무늬의 느낌을 요즈음 즐긴다.”

     

그림은 응당 해야 하는 일

오치균 작가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및 미국 브루클린대학원을 졸업했다. 아트마이애미, 아부다비 아트페어, 아트스테이지 싱가포르, 아트바젤 등에 출품 참여했다. 1985년 첫 개인전을 백악미술관에서 가졌고 86년 도미, 91년 금호미술관 귀국전에서 홈리스, 인체시리즈 등 불안의 어두운 그늘에 투영된 자아의 감정이입작품을 선보이며 신선한 주목을 받았다. 가나화랑전속으로 92년도 서울이라는 도시를 소재로 콜렉터들을 사로잡았다.

    



Paseo de peralta, 112×168acrylic on canvas, 1996




이후 뉴욕과 96년 뉴멕시코주 산타페로 옮겼다. 사막열대지방 특유의 잦은 기후변화와 강렬한 햇볕, 맑고 투명한 대기와 황토색사막 그리고 오렌지 빛 노을. 그곳 외곽도로 멀리 까맣게 구름이 몰려있는 하늘과 황혼직전 말간 풍경이 교차되며 투명한 공기와 어우러진 빛은 춤을 추는 듯 초현실적분위기를 띈다.

 

귀국하여 강원도 사북풍경에 천착한 그는 갤러리현대에서 2007~2013년 동안 다섯 번의 주요전시를 통해 블루칩 작가로 각인, 오늘날까지 대중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감 작가로 자리매김한 것은 의미 깊다라고 밝혔다. 한편 삼십 여점을 선보이는 이번기획전은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길, 노화랑에서 96일 오픈하여 30일까지 열리고 있다    



                       오치균 화백


 

화업 30년이 넘은 오 화백에게 화가의 길에 대해 물어 보았다. “나의 어머님은 10남매를 키우셨다. 대전외곽 시골서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농사짓고 가장노릇하면서 자식들 공부를 시켰다. 그분은 의무이자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듯이, 나 역시 아침부터 늦게까지 당연히 해야 될 일이라 생각하고 그림을 그린다. 그러나 고백하자면 어머니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권동철 미술전문기자/주간한국 2017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