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한국]지면기사

[SCULPTOR LEE GIL RAE]조각가 이길래(이길래작가,李吉來,전남영암출신조각가,2015년한국미술평론가협회작가상수상,경기문화재단,삼지송)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17. 6. 13. 00:13


(왼쪽)삼지송(Pine Tree With Three Roots), 106×212(h)×70, 2016

(오른쪽)인송(Human-shaped Pine Tree), 84×197(h)×73, 2015





궁극의 스승 자연에 대한 경의

 

 

숲으로 가라. 그곳에 진정한 휴식과 안락이 있다. 깊고 푸른 숲속만큼 평온함을 선사해 주는 곳도 없다. 숲에는 소나무가 자라고 제비꽃이 변함없이 미소를 던진다. 다람쥐는 나와 그대의 무릎 옆쪽에 앉아 생기를 불어 넣는다. 아침에는 붉은 뇌조가 아름다운 노래로 우리의 잠을 깨우고, 밤이 되면 우리는 아늑한 숲 속에서 모든 고뇌와 번뇌를 잊고 조용히 잠이 든다.”<자연과 함께한 인생, 존 뮤어(John Muir) , 느낌표 >

 

 

세월의 풍화를 머금고 있는 듯 소나무에선 충만한 조형적 매력이 풍겨진다. 작가는 동()파이프로 작업하는데 타원형표피를 갈아냈을 때 암갈색 왕솔 같은, 녹이 슬면 푸른 이끼느낌을 준다. 그리고 선을 잘라서 잎을 만드는데 옹이와 나이테도 된다.

 

동이라는 재료특성은 소나무와 많이 닮았다. 껍질, 줄기, 뿌리, 색감 등 소나무 한 그루형태들이 다 나온다. 작가에겐 재료와 표현하고픈 조형적형태가 굉장히 중요한데 그게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 것이다. 소나무 한 그루에서 이렇게 수많은 작품이 나올 줄 나 자신도 미처 몰랐다. 물성화 과정을 통해 파이프단면들에 유기체적 생명력을 부여하고 영원히 죽지 않는 소나무를 이 땅 위에 식수(植樹)해 나아가고 싶다.”




노송(Old Pine Tree), 동파이프, 동선접(copper welding) 높이500(h)가변크기설치, 2012




창조성, 신념과 열정에서 비롯돼


작가는 1988잃어버린 성()’발표이후 90년대 중반 흙 조각의 토기에 매료됐고 2000년대 초 다슬기, 석화껍질, 석재, 옹기 등의 파편재료로 점에서 선시리즈를 발표한다. 이후 동 파이프를 잘라 작업한 생성과 응집시리즈를 선보였고 2008나무연작을 발표하면서 현재의 작업과 연결된다.

 

처음부터 소나무를 기획한 것은 아니다. 자연을 표상하면서 이야기할 것이 무엇이 있나 생각하다 종교적, 주술적인 등 여러 함의를 떠 올리게 되었고 시간성, 역사성, 흔적 등을 압축해 놓은 미적상징성으로 자연스럽게 생각이 모아졌다. 특히 예전의 세발달린 삼지(三枝)토기 형태를 작업했던 때의 관심과 연구가 주요모티브로 작용되기도 했다. 그런 면에서 단지 운이 좋았다기보다 그간의 신념과 열정이 없었다면 이 소나무작업을 못 찾았을 것이다.”

 

한편 ‘2017경기문화재단예술가작업실오픈 프로젝트는 창작의 현장에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활동해 온 경기지역예술가의 작업실에서 아티스트와 소통하는 옆집예술옆집에 사는 예술가를 만나는 프로그램으로 624일 경기도 여주군 흥천면 지경계길 소재, 작가의 스튜디오를 오픈한다.

 

“4년 전, 부지를 확보해 2층으로 작업실을 꾸며 완전 정착했다. 그전에는 마석을 비롯하여 강화도, 하남고골리, 퇴촌, 논산, 충북괴산 등을 전전했었다. 그래서 이번 프로그램이 나에겐 더욱 의미가 큰데 작업장을 공개하면서 방문하시는 분들과 작품세계에 대해 폭 넓게 대화를 나누고 싶다.”




           이길래 작가


    

이길래 작가는 전남 영암군 출신으로 경희대학교 및 동대학원 미술학과 조소전공 졸업했다. 금호미술관, 박영덕화랑, 사비나미술관, 예술의전당광장 등에서 개인전을 9회 가졌다. 2015년 한국미술평론가협회작가상, 동아미술제동아미술상(국립현대미술관), 중앙미술대상전장려상(호암갤러리) 등을 수상했다. 작품소장처는 과천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삼성문화재단, CJ문화재단, 포시즌스 호텔 서울 등이다.

 

인사동 한 커피숍에서 만나 장시간 인터뷰에 응해준 그에게 30여년 작가의 길을 걸어오면서 느끼고 생각하는 조각가의 길에 대해 들어보았다. “그럴 때 생각나는 게 있다. 나 어릴 적 어머니가 시골에서 사주를 봤더니 악산에 가서 돌을 깨면서 험난하게 생활을 할 것이라며 염려스러운 마음으로 전해주셨다. 지금도 그 말씀이 잊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숙명의 길이라 여기고 작업해 나간다.”

    

 

권동철 미술전문기자/주간한국 2017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