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한국]지면기사

[ARTIST LEE JAE SAM]목탄화가 이재삼(李在三,영월읍 덕포리 출신화가,화가 이재삼,청령포,단종문화제,미메시스아트뮤지엄,이재삼작가,이재삼화백)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17. 6. 26. 21:17


저 너머(Beyond There), 728×227캔버스 위에 목탄 아크릴릭, 2006



기다림, 내 안 절실한 물살의 관능

 

 

세계가 자신을 열 때 대지는 우뚝 솟는다. 대지는 모든 것을 지탱하는 것으로서, 또 자신의법 속에 숨어서 자신을 간직하는 것으로서 그리고 끊임없이 자기를 폐쇄하는 것으로서 자신을 나타낸다. 세계는 대지의 결단과 규준을 요구하면서, 동시에 뭇 존재자를 자신의 궤도가 열고 있는 터 가운데로 이끈다.”<하이데거(Martin Heidegger), 예술 작품의 근원, 오병남·민형원 공역, 예전사>

 


비원의 달빛아래 처연하게 살풀이춤을 추듯 안개와 물이 섞인다. 불을 만나 죽()의 진액을 빼고서야 소리를 내는 대금산조가락이 유장하게 물결에 부딪힌다. 황홀하게 만휘군상 떨어지는 물방울 하나에 겨우 혈혈단신 가 보일 뿐, 비련의 그리움은 물위에 번지고 안개는 말이 없다.

 

화면은 달빛과 응달 그리고 그림자를 추적한 감성의 빛살, ()의 예찬이다. 감춰지고 드리워진 곳에서 은밀하고 농밀한 흑백의 볼륨 선연하고 목탄이 자아낸 근원의 색은 풍경화가 아니라 풍광화이다.

 

유년시절 어머니가 이모 집에 농사일을 다녀오던 밤길이었다. 그날따라 밤안개가 자욱하게 깔려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 음산한 길을 걸어야만 했다. 느낌에 기댈 수밖에 없는 보행. 그때 어렴풋하게 깨달았다. 달빛은 육감을 품는다는 것을. 나의 작업은 그 감성의 빛을 끄집어내는 것이다.”    



달빛(Moonscape), 9m10×200, 면천위에 목탄화, 2017



검은 공간, 자연과 무의식의 교감

작가는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덕포리 출신으로 동강줄기상류 강변마을에서 자랐다. 어린 시절 단종이 유배되었던 청령포를 자주 다녔는데 소나무 숲을 에워싼 음기가 굉장히 센 분위기가 뇌리에 각인되어있다고 했다.

 

서른 중반 즈음이었을 것 같다. 장릉과 꽃다운 나이 열일곱에 사사되었던 곳 관풍헌, 왕릉에 제향을 올리는 단종 문화제 등 고향영월이 가슴 깊은 곳을 파고들었다. 그 강을 건너고 깎아지른 절벽과 산을 넘었던 발자취들에 대한 심중의 흐름과 비애의 역사가 담긴 유적지. 거기서 내 정체성을 풀어내는 의식이 싹을 틔우는 것이었다.”

 

그는 20년 동안 일관되게 목탄의 흑백미학을 펼치고 있다. 목탄은 나무였던 스스로를 연소시켜 자신의 온몸을 숲의 이미지로 환생시키는 영혼의 표현체이다. 나에게 목탄은 검은 색이 아닌 검은 공간으로 존재한다. 대자연과 내재된 무의식과의 깊은 교감이라는 점에서 본질적이다.” 

    



                        이재삼 화백


 

이재삼 작가는 국립강릉대학교 미술학과와 홍익대학교대학원 서양화과를 졸업했다. 1988년 중앙미술대전 장려상수상, ‘2000 올해의 한국미술선에 선정되었다. 88년도 동숭동 일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가진 이후 1999년 한원미술관, 2000년 포스코미술관서 인물화목탄그림을 선보인다. 2005년 강원도옥수수를 대표작으로 대나무 등을 이영미술관에서 전시하였는데 이때 나무숲이 등장한다. 이후 2011년 아트사이드갤러리에서 운무와 폭포작품 등으로 모티브를 확장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편 617일부터 827일까지 열리는 이번 스물아홉 번째 기획초대전은 지난 20년간 대표작과 최근의 매화, 백일홍, 물안개 등 작품을 총망라했다. 달빛이 가지위에 내려와 앉아 있는 감성치를 아름다움을 넘어 장엄한 세계로 펼치고 있는 1000호 매화작품은 하루 12시간을 매달려 무려 7개월 동안 작업한 역작이다. 이와 함께 1000호 내외 대작 25점을 비롯하여 총35점을 경기도 파주시 문발로 소재,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1~3층에서 전시하고 있다.

 

미술관에서 장시간 인터뷰한 화백에게 화가의 길에 대한 고견을 듣자했다. “일반적으로 성공을 과녁중심에 맞추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화가는 자신의 가슴을 향해 화살을 쏘는 사람이다. 탑을 쌓아올리는 것이 아니라 우물을 파듯 땅 속으로 들어가 마침내 자기를 승화시키는 존재다. 그것이 세상 사람들이 예술가에게 바라는 것이다. 나는 그 길을, 가는 사람이다!”

    

 

권동철 미술전문기자/2017626일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