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40㎝, 2017
단순한 실루엣 뿜어져 나오는 파워
“미는 관계의 사건이다. 미에는 특별한 시간성이 내재한다. 미는 직접적인 향유를 거부한다. 사물의 미는 훨씬 나중에 다른 사물의 조명을 받아 회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미는 인광을 발하는 역사적인 퇴적물들로 구성된다. 미는 망설이는 자이며 늦둥이다. 미는 순간적인 광휘가 아니라 나중에 나타나는 고요한 빛이다.”<아름다움의 구원, 한병철 지음, 이재영 옮김, 문학과 지성사>
대형철판위에 변색이 거의 없는 우레탄페인트로 바탕을 하고 용접으로 드로잉을 한다. 그렇게 만들기도, 평면작업도 하는 과정에서 불꽃에 뜨거워서 피하기도 하고 그것이 튀겨나가 긁히거나 흉터가 난 것은 더 도드라지게도 한다. 우연을 필연으로 만든 것이다.
“시멘트 등 이전의 작업을 해오면서 어떤 지루함이 발동하다 자유로운 표현, 재미의 만끽이라는 생각이 나를 건드렸다. 그냥 철판위에 이런 것은 어떨까? 그런 시도에서 탄생했음을 숨길 수 없는데, 신기했다. 지난겨울 내내 작업하면서 이전의 따분함이 희열로 차올랐다. 철판에 손이 달라붙는 듯 한 차가움이 산행 중 마시는 약수처럼 청량감으로 전해오는 것이었다. 다음날 또 그 다음날도 작업장으로 발걸음을 내몰았다.”
(좌)붉은 소, 120×60㎝, 철 위에 페인팅 (우)228×120×21㎝
◇호흡, 흔적 등 신체성이 묻어나야
작가는 1986년 제5회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조각부문 대상을 수상하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 전까진 돌 작업도 했지만 첫 시멘트작품으로 상을 받게 된 것이다.
“내 나이 예순이 넘었는데 어린 시절 부산에서 살았었다. 6.25한국전쟁 이후 파괴된 흔적들이 주변 환경이었으니 콘크리트와 철은 나에겐 매우 자연스럽고 의미 있는 재료였다. 그것으로 큰 상을 받게 되어 ‘아, 하다 보니 되는 구나’라는 믿음이 생겼고 동력이 붙여졌다.”
이후 1987년 서울의 바탕골미술관에서 첫 개인전을 가졌고 이듬해 동숭동 문예진흥원미술회관에서 전시하게 되는데 1992년도에도 같은 장소에서 조각1점과 드로잉작품으로 구성하여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그때의 ‘집율(集律)’ 조각 작품이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야외공간에 설치되어있다.
1993년 프랑스문화성 세계예술센터초청으로 ‘르 론드-포인트 갤러리(Le Rond-Point Gallery)’개인전을 기억에 남는 주요전시로 꼽았다.
“현지 언론의 상당한 주목을 받았는데 파리전시에서 느낀 것은 상업적인 영향을 안 받을 수는 없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작가의 생각대로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바라는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작업자의 신체성이 전해오는 호흡, 흔적 등이 느껴져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친숙함으로 인지하고 있다. 원론적인 얘기 같지만 문화라는 것이 흉내가 아니라 주체적으로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인데 그것에 충실하려 한다.”
조각가 문인수
문인수(文鈏洙)작가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박영덕 화랑, 마이애미 아트페어(미국), 목암미술관 등에서 다수의 개인전을 가졌고 1993년 ‘김세중 청년조각상’을 수상했다. 현재 수원대학교 미술대학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한편 이번 전시는 철(鐵)로만 작업한 소 열여덟 작품으로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갤러리 전(Gallery 全)에서 3월15일부터 31일까지 열린다.
문 작가에게 30여년 조각가로서의 길을 걸어 온 소회를 물어 보았다. “시간이 내 작품의 고유성을 함께 만들어 간다는 것도 좋고 경제적이거나 명성을 떠나 하고 싶은 작품을 할 수 있는 것에 선택을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한편으론 끝없이 지루함을 부셔 가야하니까 자유롭긴 한데 실상 시지프스 신화 같은 것이다. 평생을 예술가로 갈 거면 여유가 필요하다. 올라갔다 내려가는 그것이 삶이니까. 고은 시인이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이라 하지 않았나!”
권동철 미술전문기자/주간한국 2017년 3월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