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한국]지면기사

〔OH SE-YEOL〕오세열 화백,학고재갤러리,동심, 암시적 기호학(예화랑, 진화랑,오세열 작가,목원대명예교수,김혜순 시)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17. 3. 2. 17:36


Untitled, 46.5×72, 1986



천진한 심성 순수영혼의 요람

 

 

공터에 모여 선 우리들은 가슴을 치지 않았다. 주먹이 빠지지 않는걸, 가슴에 박혔어. 누군가 말했다. 바람이 빠지지 않아. 가슴 속 햇살이, 무럭무럭 자람이. 주먹이 빠지지 않아. 울음 울음이 왜 빠지지 않아? 공터엔 돌무더기만 쌓여 있었다.”<김혜순 ’, 문학과지성사>

 


아마도 방과 후였을 것이다. 아직 지우지 않은 철판 앞에서 부리부리한 눈동자로 빈 의자들을 바라보며 담임시늉을 냈던 그 아이는 어릴 적 꿈을 이뤘을까. 숫자를 넣은 화면은 자신도 모르게 따라 읽게 한다. “그런데, 특별한 의미를 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숫자를 빌린 드로잉이다. 하나의 행위, 기도하는 마음의 무심 속 무의식 같은 그런 맥락이라고 한다.

 

그렇다. 실상 숫자를 떠나 살 수 없어서 예민한 것이지 세상에 태어나 몽당연필로 처음 써보았던 것이 1,2,3,4~ 숫자가 아니었던가. 그 시절 마음처럼 그렇게 읽히면 되고 선()도 자연스럽게 그냥 찍찍 그은 것으로 편안하게 다가온다.

 

올해 일흔 셋이다. 그림은 정신작업세계라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내 경우는 나이와 반비례한다. 작품근간을 이루는 사유는 동심(童心)으로 화폭엔 유년의 감성을 유추하는 회상과 그런 심성이 녹아있다. 다만 표현방법이나 기법, 재료들이 현대감각에 맞는 시대성을 보여주려 하는데 어린아이처럼 그리는 것이 아니라 어린이가 갖고 있는 마음에 다가가고자 하는 것이다.”



Untitled, 145×209Mixed Media, 1996



실험정신과 볼거리제공

화백은 1972년 조선호텔 안에 있던 조선화랑에서 반추상으로 첫 개인전을 가진 이후 1984, 1986년 진화랑 그리고 1991, 1997년 예화랑에서 각각 두 번에 걸친 전시를 통해 오늘날 ‘Untitled(무제)’ 작품경향을 선보였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전시로도 이 시기를 꼽았다.

 

예화랑 1~2층에 에너지가 분출한 작품을 발표했는데 상당한 호평 받았다. 다양하고 과감하게 재료를 썼고 캔버스뿐만 아니라 함지박 등을 활용하기도 했다. 그런 발상은 작품을 틀에 끼워 넣는 것을 싫어하는 본성으로,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 하는 정신성으로 작업한 성과였다.”

 

이와 함께 길거리에 버려진 단추, 장난감 등 폐품들을 오브제 콜라주로 활용하기도 한다. “어떤 식으로 사용하는가에 따라서 이미 버려진 것들이지만 되살아날 수 있다. 그것들이 할 수 있는 역할을 생각하곤 하는데 요즈음 재미를 붙여 조형성이나 형태가 보이면 가져와 오리기도하고 붙여보기도 한다.”     




오세열(OH SE-YEOL)화백/작품·인물사진제공=학고재갤러리


 


오세열 작가는 서라벌예술대학 회화과와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을 졸업했고 목원대 명예교수이다. 파리, 브뤼셀, 런던, 타이베이, 학고재상하이 등에서 다수개인전을 가졌다. 이번 암시적 기호학(Semiotic Metaphors)’전은 222일 오픈하여 326일까지 서울시 종로구 소격동, 학고재갤러리 전관에서 회화50여점을 전시하고 있다.

작가에겐 볼거리제공이 의무이자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뭔가 작업변화가 있어야 개인전을 했고 그것을 지키려 했다. 2008년 샘터화랑 이후 국내전시는 9년만인데 항상 거기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실험정신을 중시하는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라고 배경을 밝혔다.

 

한편 화백은 전화인터뷰에서 경기도 양평군 강상면에 소재한 작업실에서 남한강변과 아름드리 소나무가 빽빽한 조용한 뒷산을 시간만 나면 산책하며 영감을 얻는다고 했다. 그리고 화가의 길에 대한 고견을 전했다.

 

많은 사람들이 넓은 길로 가려하지 않나? 그런데 이 길은 좁은 길이다. 쉬운 일은 아니라서 결코 사명감이 없으면 어렵다. 자기와의 싸움은 물론이고 여러 외적어려움을 극복하지 않으면 이겨낼 수 없다. 그림 그릴 때는 행복하지만 내 손을 떠나 전시장에 걸린 작품을 남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니 욕심마저도 내려놔야한다.”

 


권동철 미술전문기자/주간한국 2017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