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토, 454.6×181.8㎝ 캔버스에 유채, 2010
절망·증오·망각 그 광야의 묵시록
“가난한 아버지의 작은 볏단 같았던 저는 결코 눈물 흘리지 않았으므로 아버지 이제 그만 발걸음을 돌리세요/삶이란 마침내 강물 같은 것이라고 강물 위에 부서지는 햇살 같은 것이라고 아버지도 저만치 강물이 되어 뒤돌아보지 말고 흘러가세요/이곳에도 그리움 때문에 꽃은 피고 기다리는 자의 새벽도 밝아옵니다/길 잃은 임진강의 왜가리들은 더 따뜻한 곳을 찾아 길을 떠나고 길을 기다리는 자의 새벽길 되어 어둠의 그림자로 햇살이 되어 저도 이제 어딘가로 길 떠납니다”<정호승 시, 임진강에서, 열림원>
콩이며 옥수수가 메마른 뿌리를 드러낸 채 진눈개비에 항거하듯 꼿꼿하게 서있다. 삶의 고통이라는 말조차 차라리 사치스러운 것인가. 지친 황혼이 간신히 산을 넘어간 여운의 자리에 잿빛그림자만이 아스라이 드러누웠는데 황량한 벌판에 갈까마귀 떼가 절규하듯 아우성을 토한다. 음울한 초겨울 진흙길을 삐걱거리며 굴러간 바퀴와 발자국흔적들.
누구며 모두 어디로 갔을까. 발해영토이며 1864년 ‘꼬레사람(고려인)’이주가 시작된 후 대한광복군정부가 활동한 항일투쟁유적 등 우리 근대사자취가 남아있는 작품‘동토(凍土)’배경, 러시아 땅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이다. 고려인들은 1937년 스탈린 정권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당했고 1991년 구소련 해체 후 고르바초프시대에 러시아를 비롯하여 중앙아시아 등지로 이주한다.
“2009년 일제강점기독립운동가 자취를 현장스케치하며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수 천리 떨어진 곳에 와서 조국광복을 위해 희생한 분들을 잊는 건 아닐까하는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나의 작업에서 그러한 기억과 망각을 연결하려했다.”
이와 함께 적막 가득한 임진강 강물위로 일제히 날아오르는 수천수만 철새들을 그린 ‘나는 새는 경계가 없다’와 ‘연천발 원산행’ 화폭엔 기차를 타면 단숨에 갈 수 있는 고향을 지척에 둔 망향의 그리움이 절절이 묻어난다. 오브제 꽃들은 돌아가지 못하고 돌아가신 사람들에 대한 조의(弔意)처럼 또 ‘연천유엔군화장장시설’ 등 역사현장의 애도를 증폭시키고 있다.
△(좌)연천발 원산행, 421×259㎝ 캔버스에 유채, 조화, 마끈, 2013
△(우)나는 새는 경계가 없다, 200×90㎝ 캔버스에 유채, 마끈, 종이끈, 2015
◇분단, 의식과 정서의 출발점
민중미술계열 중견화가인 송창 작가는 조선대학교 및 경원대학교대학원 회화과를 졸업했다. 1982년 미술동인 ‘임술년’을 비롯하여 민중미술15년展(국립현대미술관), 민중의 고동-한국미술의 리얼리즘(일본 니이가타현립 반다이지마미술관) 등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1991년 가람화랑 ‘분단시대의 풍경화’개인전을 시작으로 ‘분단’을 심층적 주제로 구사하고 있는데 2012년부터 임진강을 집중답사, 다큐멘터리처럼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분단은 단순한 그림소재뿐만 아니라 문화전반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의식과 정서의 출발점이라는 생각이다. 임진강 역시 분단의 이슈화된 강이라는 상징성이 있고 갈 때마다 가슴 먹먹하게 아픔으로 느껴온다. 그런 부분을 깊게 들여다보며 표현해 내려한다”라고 했다.
송창(宋昌)화백
이번 ‘2017동시대이슈展-분단’기획의 ‘잊혀진 풍경’전은 화백의 열여섯 번째 개인전이다. 300호 세 개, 두 개 등을 합친 대작중심의 신작25점과 입체13점 등 총38점을 경기도 성남시 성남대로 성남아트센터큐브미술관에서 2월10일부터 4월9일까지 선보인다.
한편 가장기억에 남는 개인전으로 일제강점기~5·18광주민주화운동까지 평면과 입체 200여점의 1997년 동아갤러리 ‘기억의 숲-소나무’전시를 꼽았다. “심혈을 기울였다. 작가로서 가장 깊이 있게 근·현대사를 다뤘다고 자부하는데 아직도 인상 깊었던 전시로 회자되고 있다”라고 전했다.
매서운 한파가 몰아치던 전시오픈 날, 성남아트센터를 함께 걸으며 화업에 대한 소회를 청했다. “단순흑백논리가 아니라 예술에서도 다양성이 공유되고 존중되어졌으면 한다. 그것이 공존의 진정성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권동철 미술전문기자/ 주간한국 2017년 2월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