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음악 인문학

〔Painter LEE DONG SU〕동중정,動中精,Holism,리하르트 바그너,Richard, Wagner,에로스의 종말,데카르트,코기토,텍스츄어,서양화가이동수,이동수작가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17. 3. 7. 20:25


Flow Bowl, 195×130Oil on canvas, 2015




감추면서 드러내는 파동의 심연

 

 

나를 에워싸는 이 소리는 부드러운 공기의 물결일까? 기쁨에 넘쳐나는 향기의 파도일까? 넘실거리며 나를 감싸며 출렁이구나 숨을 쉴까? 귀를 기울일까? 달콤한 향기 속에서 마지막 숨을 내쉴까? 넘실대는 물살 속에 울려 나오는 소리 속에 세계의 숨결이 불어오는 우주 속에빠진다 가라앉는다의식이 없어진다지고한 쾌락이여!”<리하르트 바그너(Richard, Wagner)의 악극 트리스탄과 이졸데마지막 노래. 한병철 , 에로스의 종말, 문학과 지성사>

    

 

햇살이 창을 통해 은구슬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오후. 따끈하게 우려낸 매화꽃차 한잔을 입술에 대며 향기에 젖어 지그시 눈을 감는다. 한여름 갈증을 풀어준 차디찬 샘물 한 그릇을 단숨에 들이켰던 그 물 맛이 불현 듯 의식의 주인으로 일순 들어오는 고요 속, 데카르트(R. Descartes) 사색의 산실 성찰의 코기토가 아늑한 시간의 즐거움을 유영하듯 흘러간다. 해안선엔 세상의 오염, 근심, 불순물을 여과한 순수의 하얀 물거품이 가없는 반복으로 오가는데.

 

헌신의 모정 자상한 정감으로 넘치던 손때 묻은 자국처럼 두툼하게 텍스츄어(texture)를 살린 질그릇의 구연부(口緣部)는 촉각적 미감의 리얼리티로 현실감을 계승해 낸다. 깊고 자연스러운 손맛으로 우러나는 그릇은 온축된 기억들을 섬광처럼 와 이어주는 텔레파시의 매개로 더욱 실감케 한다. 무릇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이 그러하듯, 이 역시 물감을 두껍게 바르고 붓으로 하나하나 찍어 냄으로써 지루하고도 오랜 노동력을 요구하는 지난한 작업과정을 거친 산물인 것이다.

    



259×182, 2014




홍매(紅梅)인가! 꼿꼿한 지조만큼이나 새순에 피어나는 향기가 은근히 감도는 듯하다. 조형미와 공간속에 어우러진 회화성이 가미된 문양은 자연스러운 연속흐름으로 현재의 삶을 고상한 심상시간으로 인도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문득 폭풍한설을 건너온 헤진 버선에 삐죽이 나온 발가락이 햇살에 야들하게 반짝이는 그 차가운 따스함에 징징거리다 웃어 제쳤던 유년기억이 스치는 것은 또 무슨 느낌인가.

    


162×130, 2011




작품 주전자는 단아하고 정결스러운 담백함이 동중정(動中精)의 고매함을 더욱 고격으로 상승시킨다. 반투명한 화면은 순간적 감성의 덧입힘으로, 창공을 나는 새가 봄직한 허공과 지상을 아우르는 심화의 공간감을 펼친다. 어느 봄 산벚꽃 이 눈처럼 쏟아지던 언덕길의 설렘과 가을바람에 구르던 낙엽위에 얹힌 이름들의 흔적들이, 감추면서 동시에 드러내는 지각의 균형감과 연동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화가가 본질에 대한 깊은 숙고와 세련된 회화의 미학을 융합함으로써 관람자의 심연을 돌아보게 하고 동시에 고요한 명상의 대화로 음미하게 인도하는 힘이 된다.

 

이동수 작가는 사물은 본질로써만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사물 자체를 분석과 유념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부분보다는 전체의 상호관련성에 주목 한다라고 했다. 이는 모든 요소들이 서로 관련되어 있다는 믿음에 기초한 총체(Holism), 찰나지만 생생하게 숨 쉬는 존재와 의식의 역동을 함의한 순도 높은 소리의 공명 그리고 무한으로 퍼져 나아가며 순환하는 아득히 먼 광선의 신비롭게 휘어진 곡률처럼의 공전(公轉)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는 것과 다름 아니다.


                                                          △권동철/경제월간 인사이트코리아(Insight Korea) 2017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