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음악 인문학

〔Insight Fine Art〕서양화가 한영준|에메랄드물빛에 아롱대는 허공(칼릴 지브란,Kahlil Gibran,HAN YOUNG JOON,한영준 작가)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16. 8. 5. 18:44


구겨짐-phenomena, 92×64한지에 크레용과 아크릴, 2016




아주 우연히 연녹색사과 하나가 곧 수직으로 낙하하여 바다깊이 떨어질듯 하늘위에 걸려있는 걸 목도했었어. 걸려있는 듯 했지만, 실상은 스스로 떠올라 있다는 표현이 더 자연스러울 같았는데 고백하자면 그 광경을 보고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었겠니?

 

노을은 검붉고 수평선 너머 윙윙 세차게 흔들리는 불안의 기류가 광막(廣漠)한 침묵으로 깔려있었지. 그런데 그건 의 느낌이었을 뿐, 이상한 건 입 안 가득 침을 고이게 하는 시큼한 맛이 도는 그 사과는 너무나 태연스럽게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당당하게 떠있었다는 거야. 마치 꼭지가 언제나 하늘방향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비웃기라도 하듯 탱탱한 표피를 유지한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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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언덕에 힘없이 풀썩 주저앉는 깡마른 를 보게 된 건 긴장과 불확실성이 팽팽한 그때였어. 바람에 곧 날아갈 듯 한 섬약한 체구는 겨우 고개를 든 채 한참동안 멍하게 풍경을 바라보다 낡은 배낭에서 몽당연필을 꺼내 시나브로 뭔가를 기록하는 것이 아닌가.

 

아이러니함과 언밸런스 투성이로 가득한 삶. 오늘 난 세상의 진창에서 신비로움과 갸륵함을 보았네. 그것은 자신감. 빨간 사과를 연둣빛으로 받아내고 있는,”까지 쓰던 그가 갑자기 문장을 멈췄어. 그리고 잠시 머뭇거리다 뭔가 가냘픈 회한을 독백하듯 가는 신음소리를 낸 후 다시 써 내려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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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지 못하는 것을 지켜보며 들리지 않는 것에 귀 기울이고 보이지 않는 것을 응시하며 이해 할 수 없는 것을 헤아리고 이루지 못한 것을 소유하도록 밤의 긴 침묵 속에서 머리맡에 파닥이는 이것은 어떤 날개인지.”<칼릴 지브란(Kahlil Gibran) , 사원의 문 앞에서, 나희덕 옮김, 진선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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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쾌함, 희망을 부른 흔적

긴 침묵에서 깨어나듯 경쾌하게 희망을 부르듯 스카이블루사과가 물살을 가벼이 박차고 허공으로 솟구치는 찰나였지. “하늘도 바다도 세상이 모두 푸르도다. 하늘의 사과들이 제 각각의 빛으로 자신을 드러내 보이는데 저 수평선 너머엔 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아아, 저 솟구치는 여명(黎明)까지 푸르게 물들일 수 있다면.”

 

처음으로, 낮고 거친 음성으로 그가 격렬한 어조로 소리쳤지만 그 앞을 허망함의 흐름이 낯설게 몇 번 오갔지. 그뿐이었어.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검은 먹구름이 걷히고 누런 황금사과 달이 떠 있었어. 바닷물은 밝은 달 보다 더 아름답게 빛을 내고 있노라 말하듯 보라색물결을 일렁이고 잔잔히 빛나는 물결위엔 어느 작은 새가 떨구고 간 하얀 깃털 하나가 뽀송뽀송한 베개를 베고 느긋하게 드러누워 있는 듯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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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 너그러운 한여름바다여, 깃털이여. 꿈처럼 빠른 움직임으로 날아 가버린 새의 흔적이런가. 먼 길을 날다가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과 반짝거리는 수면위에 잠시 날개를 접고 쉬어 가도록 잔잔히 자리를 내어주다니!

 

권동철/전문위원, 데일리한국 미술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