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음악 인문학

〔Photographer, CHOI YOUNG JIN〕저 힘찬 여명의 새 떼! (사진작가 최영진,최영진 작가,김사인,시,새,Jacobson Space Gallery)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16. 4. 11. 14:32


서울, 30×40-Ultra chrome print, 2006




진정 남은 것은 허공이렷다. 고백하자면, 짙은 안개 걷힐 때 조금씩 드러나는 그대표정과 나뭇잎의 수줍음 그리고 무뚝뚝하게 흐르는 강물을 선웃음 치며 바라보던 그날이었어. 햇살은 눈부시고 흐드러지게 만발한 꽃 앞에서 공연히 눈물을 쏟았었지. 그러다 어느새 어둠이 밀려와 별들 속삭이는 보름달이 휘영청 떠오를 때 초저녁 단잠서 깨어난 그때 바라본, 태초부터의 모든 시간을 가슴에 끌어안은 얼마나 크고 넓은 별 무리 하늘이었는지.

 

애잔한 슬픔과 숭고한 자취의 장엄함을 끌어안고 막스 브루흐(Max Bruch) ‘콜 니드라이(Kol Nidrei, 신의 날)’의 로맨틱함 묻어나는 보드라운 첼로선율이 흐른다. 자아를 잃어버린 자의 남루한 자화상에 목련꽃잎보다 더 부드러운 감촉의 밤바람이 애무하며 지나갔다. 그 허무한 욕망의 동공에 비친 밤하늘, 새 한 마리 날아가고 다시 홀로 남은 마음이 치어다보는 공중에 뱅뱅 돌면서 흥겹게 춤을 추다 흩어지는 저 힘찬 여명의 새 떼!





   

150×225, 2009




불가사의한 용기와 정열

새는 홀로 땅위에 내려앉고 날아오른다. 그들은 바람과 햇살과 구름 등 우주의 청명한 숨소리와 융화하며 매 순간 신선한 조형세계를 그려 나아간다. 그 능란한 발돋움을 받쳐주는 성숙한 지향이 새의 힘일 진데, 아마도 새들의 요람은 하늘인가보다. 최 작가는 창공에 수묵화를 흩뿌려놓은 듯 새들의 변화무쌍한 군무의 율동을 통해 자유로움을 넘어 외경의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허공엔 검은색채의 무리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그는 하늘에서는 졸거나 잠들지 않고 죽지도 않는 새를 우리의 시선 중심에 데려와 는 누구인가를 되묻게 한다. 이처럼 하늘을 나는 새를 심미적 관조의 동반자로 새와 나의 존재를 동일화함으로써 비상(飛上)하는 날개 짓을 통해 인간의 가없는 욕망을 포착해 내고 있는 것이다.

 

추락은 새가 날개를 접을 때를 의미한다. 가냘픈 몸통으로 끊임없이 날개 짓을 하며 어마어마한 시간의 역사를 건너온 새의 불가사의 한 자태는 오늘도 우리게 네트워크를 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서해안 지역을 자주 여행하다 자연스럽게 겨울철에 찾아오는 철새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다. 아침이나 해질 무렵 수많은 새들이 무리를 지어 일제히 날면서 바람결에 맞추어 춤을 추는 모습은 환상의 세계를 보는 것 같다. 가까이 날 때 순간순간의 날갯짓은 다양한 형태로 포착된다. 현실과 마음의 세계를 연결 짓는 방법을 이 작업을 통해 깨닫게 되어 행복하다.”





   

66×100, 2015




화려한 군무 마음의 창

가득 차 있지만 텅 비어있는 상태, 행함이 없지만 쉬지 않고 생성하면서 온갖 신묘한 것들이 드나드는 문()처럼 하늘은, 공간이 아니라 마음의 세계다. 새들은 그 문을 힘차고 부드럽게, 여유롭고 아름다우며 자유로이 왕래하는 존재다.

 

화면의 새는 훨훨 하늘을 날고픈 인간의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꿈, 우주원리의 오묘한 열쇄를 지니고 있을 것 같은 현란한 춤, 갈림길에 서성이는 고독한 자에게 건네는 간결한 이정표 그리고 무엇보다 마음을 갈음하는 시각적 촉매제다.

 

새여 물길 거슬러 멀리 이 도회의 강가에까지 이른 갈매기여/네 몸짓은 이미 평화로워 이승의 것이 아니구나/머리풀고 깃 접을 아무데도 여기는 없다/우아한 날개짓 너머 시간은 멎어 있고 죽음과 같은 고요만 깊고 깊다 (중략) 돌아가 쉬라 새여/훗날의 아름다운 하늘 속으로/네 지나간 자리엔 감꽃 하나지지 않았으니”<김사인 , , 창비>

 



 

=권동철, 경제월간 인사이트코리아(Insight Korea) 2016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