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음악 인문학

〔South Korean Artist, AHN YOUNG NA〕 화가 안영나, 순리와 성찰이 응축된 노래(안영나 작가, 한국화가 안영나,安泳娜,서원대학교 교수)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16. 4. 2. 00:15


135×135




고택토담엔 형형색색의 크고 작은 반들반들한 돌들이 순박한 무질서처럼 박혀있었다. 붉은 노을이 담벼락을 비추면 돌의 윤기와 저녁 빛이 어우러져 미묘한 광채들이 눈부시게 반짝였다. 나지막하면서도 길게 휘어진 담을 덮은 기와의 부드러운 곡선은 깔끔하게 정돈된 듯 어떤 위엄마저 느끼게 했다.

 

한눈에 보아도 어림잡아 백년은 족히 되었음직한 묵직한 아름드리 진달래가 담을 훌쩍 넘는 큰 키로 바위처럼 턱 버티고 서 있었다. 튼실하게 땅에 뿌리를 내리고 곧게 뻗어 오른 가지들엔 풍만하게 부푼 연홍꽃잎이 만개해 있었다. 황토색 담과 먹빛기와 위로 고개를 내민 꽃봉오리와 우아하게 흩날리는 꽃잎은 홀연 지나는 길손을 희롱하는 듯 보였다.




   

70×70




그냥 하늘거릴 뿐이라고 내숭을 떨지만 어느 나그네는 제 스스로 걸음을 멈춰 고매하다, 시와 소리 한 소절이 절로 나온다는 둥 입에 침이 마르도록 갈채를 보냈다. 어느 봄날 넋을 놓고 저를 바라보는 훤칠한 총각에게 치마폭을 감싸듯 한 꽃잎이 나풀거리며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한마디 던진다. ‘소인 단지 잔바람에 흔들리는 한 떨기 꽃일 뿐. 헌데 곱다고 말로만 떠들면, 어쩐다요?





   

Flower No Flower, 194×130Acrylic on canvas, 2015




확장성, 존재의 동감과 믿음

안영나 작가하면 의 화가가 먼저 떠오른다. 화면은 간결미와 대범한 기운이 함께 전해온다. 애써 가릴 것도 그렇다고 아닌 걸 그렇다고 할 이유도 없는 그 자체로서 파드득한 생의 찰나를 건져 올린 심상(心象)이 전해져온다.

 

꽃이라는 테마가 뚜렷한 만큼 여백은 후하거나 적어도 여지를 남겨둔 인상이 지배적이다. 언뜻 꽃을 강조한 듯 보이지만 고운영혼의 인식에 방점을 둔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기도 하다. 마치 먹물이 힘차게 번지는 발묵(潑墨)의 에너지처럼 꽃이 물결위에 떠간다는 느낌보다 물길을 끌어안고 함께 유영하는 막힘없이 열어놓은 그림의 확장성은 서로의 존재를 동감하는 짜릿한 확신처럼 강렬하다.




   

Flower No Flower, 90.9×60.6Acrylic on canvas, 2015





이 관점에서 꽃이자 동시에 꽃이 아닌(Flower No Flower)’연작명제는 자연과 인간 그리고 대우주의 순리에 대한 직관과 내면적 성찰이 응축된 조형언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동시에 어엿함에서 찾아낸 꽃은 흠결 없는 완전한 독립개체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과 다름 아니다.

 

작가는 한국화가 대중과 진솔하게 호흡을 할 수 있다면 먹을 갈지 않더라도 먹 느낌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수묵작업 외에도 캔버스 위 아크릴작업도 병행한다. 앞으로는 꽃 작업을 다채로운 재료를 가지고 재미나게 적극적으로 수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나의 작품에서 관람자가 힐링(healing)되고 꽃에서 자기만의 건강한 영감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덧붙였다.





135×135




변화에 동승하는 마음자리

아지랑이도 황홀한 꽃에 취해 쉬이 지나치지 못해 한나절 쯤 어울려 흥건히 노래에 취해있다. 또 굽이굽이 도는 물이라지만 그쯤 되려면 회오리바람에 휘말려 뱅뱅 돌다가 겨우 빠져나왔거나 어느 후미진 개울 풀 섶에서 한 계절 이슬을 모아들인 후에야 물줄기로 들게 되었을 터.

 

까짓 한 송이 꽃을 둥실 띄워 인생길을 가는 것이 뭐 그리 대수인가. 그도 못하면 어찌 한 세상 살았노라 할 수 있을 것인가. 진정 가 없는 마음자리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꽃씨가 발아하듯 고정관념의 틀을 깨고 변화의 흐름에 동승하는 본질에 대한 문제의식은 단지 한 송이 꽃으로도 의미를 읽어낼 수 있다는 그것이 꽃이자 동시에 꽃이 아닌화두(話頭)이다.

 

 

=권동철, 인사이트코리아 2016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