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고피아니스트 정진희 사진:이미화 기자
다락방 물건을 정리하다 어느 한 귀퉁이서 유년의 낙서 한 장 발견해 본 기억 있으시죠. 조그마한 기록이 그 시절 ‘나’를 선명하게 떠올리게 하고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합니다. 순수와 열정은 시간이 흘러도 빛이 납니다. 애수와 고상한 추억여행이 녹아있는 때, 묻은 악보 한 장처럼 탱고엔 회상(回想)이 녹아있습니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Buenos Aires) 탱고거리 산뗄모(San Telmo). 골동품 가게들이 즐비하고 카페테리아(Cafeteria)에서 여유를 즐기는 시민들과 거리의 악사가 눈빛을 마주한다. 그리고 탱고로 삶의 애환을 나눈다.
“친구 같은, 친구를 이어주는 그리고 무엇을 초월하는 탱고는 삶 그 자체다. 정서와 감동의 교감이 우선이다. 모든 것은 자연스러운 호흡으로 만난다. 적어도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민, 그들은 그렇다.” 탱고피아니스트 정진희.
연주할 때 느낌을 묻자 “존재이유를 찾아 몸부림쳤던 나의 모습이 떠올려 진다. 그 시절 감정들이 스며들고 몰입되면 어느 곳에서든 혼자 있는 느낌”이라했다. 그는 열여섯 어린나이에 무료로 공부할 수 있다는 국립음악학교를 찾아 혼자 서울을 떠났다.
“나의 십대는 힘듦을 넘어 혼자 감당하기 벅찼던 시기였으나 오직 음악을 하고 싶다는 일념뿐이었다. 바다처럼 넓은 라플라타 강(La Plata)을 바라보면 많은 위안이 되었고 하느님의 축복으로 놀랍게도 훌륭한 음악스승에게 지도받을 수 있었다. 멜랑콜리하고 미스터리한 ‘좋은 공기’라는 뜻의 부에노스아이레스는 내 생(生)의 소중한 공간이다.”
탱고피아니스트 정진희 사진:이미화 기자
한국인이 좋아할 만한 탱고 몇 곡 추천을 부탁했다. 아카데미상에 빛나는 영화 ‘여인의 향기’에서 알 파치노(Al Pacino)가 아름다운 여성과 멋지게 탱고 춤을 선보이는 곡 ‘간발의 차이로(Por Una Cabeza)', 피아졸라가 아버지의 죽음을 접하고 애도하면서 지은 노래 ‘안녕 아버지(Adios Nonino)'를 꼽았다.
그는 부에노스아이레스 만자나 데 라스 루체스(Manzana De Las Luces)국립음악홀에서 데뷔했다. '탱고황제'로 불리는 아스토르 피아졸라(Astor Piazzolla)의 미망인, 라우라 에스칼라다(Laura Escalada)와의 만남은 큰 용기와 힘이 되어주었다.
“연주회에 그분이 오셨다는 말을 듣고 매우 긴장됐었다. 연주가 끝나고 객석을 봤는데 기립박수를 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미망인은 나의 얼굴을 쓰다듬으면서 ‘난 너희들의 음악을 믿는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공기를 우리와 함께 마셨기 때문’이라며 격려해주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말했다. “나에게서 음악은 ‘인생의 과제’같은 것이다. 미약하지만 앞으로 음악을 통해 내가 할 일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출처=글-권동철, 이코노믹리뷰 2013년 4월22일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