눕힌 눈, 40x30cm
작은 꽃 앞에 앉다가 문득 받기만 했다는 생각이 확 밀려와 막막해하며 허둥거렸던 그대. 나는 지금도 생각과 눈이 온전치 않다는, 고백. 그러나 비탈의 봄 햇살처럼 누군가에겐 여전한 뜨거움!
언덕엔 늘 바람이 불고 가당치 않게 그 궤적을 좇으려했다. 나무들이 눕는 방향이 그것일거라 여겼지만 온전한 생각은 아니었다. 자욱한 안개비 수평선에 흩날리던 밤 그가 돌아왔다. 바람은 마음서 일고 마주보아 누운 것이 끌림인 것을. 사랑한다는 말 대신 가슴에 꽂아준 하얀 철쭉 한 송이.
한잔 술 들이켜 깨끗이 잊어버리자던 당신. 싱그러운 꽃향기 그대로라며 안아준 그 밤엔 온 몸 젖었네. “내 곁의 당신 체취 너무 좋아요. 잠이든 눈가의 주름 멋스러워 살며시 만져보고 싶어요. 이젠 당신과 떨어지지 않을 겁니다.”
어떤 노래, 40x60cm mixed media, 2012
질투로 새벽 잠 설친 꽃샘바람이 유난히 윙윙거렸다. 낮술에 취한 나그네는 아지랑이에 홀려 들판에서 길게 잠이 들었다 을씨년스런 한기에 일어났다. 부스스한 얼굴에 냉랭한 아침이슬이 뺨을 타고 흐른다. 그는 생전처음 낮은 곳에서 꽃들을 바라보았다. 제 생의 무게만큼 올망졸망 잘 자라난 꽃들의 향연. 이들이 젊음의 풋기운같이 동트는 아침 바닷가에 희망의 나래를 꽂은 주인공들이었다.
새벽은 늘 겸손하게 크나큰 확장으로 하루를 열었다. 보슬보슬 알알이 쏟아지는 천진스런 물방울이 꽃잎에 간지러운 장난을 건다. ‘이웃들은 꽃 같은 존재’라며 꽃에게 예의를 갖춰 고마움을 전한다. “사내가 초록 페인트 통을 엎지른다/나는 붉은 색이 없다/손목을 잘라야겠다”<진은영 詩, 봄이왔다>
◇언젠간 가겠지, 아쉬운 내청춘의 초상
구불구불한 언덕, 뜨거워지는 눈시울처럼 불그레한 황톳길엔 띄엄띄엄 새 발자국이 무료한 시간을 뒤척인다. 산자락은 온통 들꽃 천지. 작별의 슬픔을 접고 동경심(憧憬心)으로 피어난 꽃들은 일제히 제 빛깔로 절정을 뽐낸다.
숨겨놓은 희망, 40x60cm
누가 한 철만 피는 꽃이라 하나. 느릿느릿 타박거리며 산자락 휘감아 오르던 어머니는 바람에 살랑대는 진달래 꽃무리 옆에 쉬어가자며 잠시 앉는다. 뭉게뭉게 흰 구름도 흐르다, 지나가네. 지긋이 바라 본 하늘은 어찌 저리도 해맑을까. 아들 등에 업힌 어머니, 깃털처럼 가벼워 눈시울 뜨거워지네. 아이처럼 좋아라하며 코끝으로 내민 연분홍 한 송이.
“열아홉 시절, 한 아름 건네줄 땐 얼마나 가슴 떨렸던지….” 노모(老母)는 흐르는 세월처럼 노래를 흥얼거린다. ‘아카시아 꽃잎 하얗게 흩날리면 당신의 하늘을 바라보아요. 언젠가는 가겠지. 청춘은 두 번 오지 않아 헛되이 세월을 보내지 말아다오!”
△출처=글-권동철, 이코노믹리뷰 2012년 3월22일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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