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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JI HYUN〕 한국화가 김지현 | 불, 물, 공기, 땅. ‘나’의 원형 (김지현 작가, 한국화 김지현)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15. 5. 14. 22:45

 

(왼쪽)Deja-vu, 50×50㎝ 201 (오른쪽)Scenery in Memory, 50×50㎝ 2011

 

 

     

 

저녁 강가. 가슴에 구멍이 숭숭뚫린 물그림자가 일생을 풀어놓았다. 핑크빛 노을 속으로 미완의 기록들이 소멸했다. 나는 그때 물위에 비처럼 쏟아지는 비애를, 처음 보았다.

 

  

실 같은 물꼬가 트였다. 새 길이다. 만삭의 물고기 한 마리가 눈 앞의 냇가에 이르지 못한 채 우물가 숲에 그만 알을 쏟아놓고 말았다. 어미는 주검으로 메마름을 감쌌다. 그러므로 물줄기는 한 생명이 촛불처럼 몸을 태운 헌신에서 비롯됐다.

 

어린 생명들이 와르르 내로 흘러들었다. 수면(水面)이 번진다. 그리고 바람이 지나갔다. 공중에 날리는 물고기 비늘이 찬란한 한 송이 꽃으로 모아졌다 흩어진다. 세상으로 나간다는 것 또는 길 떠난다는 것, 보이는 것과 매만져지지 않는데 가슴 아픈 것 그리고 우연한 듯 익숙한 결. 바람은 희망과 절망을 번갈아 실어 나르는 것이 임무라며 허망한 표정으로 고백했다.

 

퇴적의 절벽 아래로 사라졌던 꽃잎들이 기억의 강물위에 떨어진다. 물과 꽃이 만나는 순간, 은하 띠처럼 오묘한 하얀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눈이 부셔 바라볼 수 없는 그때 명랑한 목소리의 첫인사처럼 에메랄드 커플링반지가 언뜻 보였다.

 

청순의 시절 풋풋한 사랑의 약속인가, 이루지 못한 언약의 세월일까. 수정처럼 투명한 물결에 선명히 아른거리는 초록 순수 이파리들. 아아, 지상을 잇는 잎들의 주인. 순백 원피스를 입은 호기심 어린 눈동자를 두리번거리며 들꽃을 아름 안은 무명지에 빛나는 저.

 

 

 

 

   

Scenery in Memory, 50×130Korean ink & Coloring on cloth, 2011

 

 

 

 

물의 노래는 깊은 시간의 공간으로 회향했다. 마음이 열린 길목의 싱그러운 생과일주스를 파는 자작나무 숲 정거장에서 잠시 휴식하곤 꽃의 완전성(完全性)을 만나러 간다며 나그네는 다시 일어섰다.

 

그리하여 그가 진정으로 자기 고독의 장본인이 되었을 때 마지막으로 그가 시간을 따지지 않고 우주의 아름다운 측면을 관조할 수 있을 때, 이 몽상가는 자신 안에서 열리는 어떤 존재를 느낀다.”<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 ‘몽상의 시학’>

 

 

그러함으로 나는 단순한가, 새로워지는가

장중하다. , , 공기, . ‘의 원형이다. 그러함으로 나는 단순한가, 새로워지는가. 나무에 등을 기댄다.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다 숲 위 하늘을 바라본다. 참으로 깨끗하고 푸르고 드높다. 적념(寂念)의 흐름. 얕은 강가 조가비에서 고운 무지개색이 물을 뚫고 나뭇잎에 오른다.

 

위대하다, 몽상가의 눈물 한 방울에 우주를 보았음으로. 그리고 천년의 랑데부에서 돌아온 그대. 이제 겸손한 묵독(默讀)의 시간을 맞이할 때가 왔다!

 

 

 

 

 출처=-권동철, 이코노믹리뷰 2012525일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