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오지심(羞惡之心), 730×600㎜ 저 철분 유리 뒷면에 진공증착, 2015
‘하얀 바다’를 타이틀로 15일~30일까지 갤러리 자인제노(Gallery ZEINXENO)에서 개인전을 갖는 최익진 작가의 전시장을 찾았다. ‘일엽편주’, ‘소묘’ 등 작품들 가운데 부끄러운 마음을 일컫는 ‘수오지심(羞惡之心)’의 ‘호랑이’ 이미지작품을 두고 인터뷰 했다. 수오지심은 맹자(孟子)의 사단(四端) 즉 측은지심(惻隱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 중 하나다.
작품은 각각 거울 위에 마치 수묵으로 붓질한 듯 호랑이 얼굴만 있을 뿐 그 외에 다른 이미지가 없다. 담론을 풀어가듯 조형언어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작품 앞에 대상이 서는 순간 다양한 요소들을 흡인하게 됨으로써 그 이미지는 호랑이와 프레임 안에서 하나의 작품이 되어버리는데 이는 다분히 작가의도에 기초하고 있다.
그는 “호랑이는 먹이사슬 정점에 있는 상징이기도하지만 동시에 극복대상이기도 하다. 공포와 두려움의 자연계 동물을 뛰어넘어 첨예화된 자본제도나 권력 혹은 시스템 속 ‘나’의 존재인식을 상기시키고자 했다”라고 말했다. 작품 앞에서면 호랑이의 눈과 투영된 ‘내’가 시선으로 마주치기도하고 겹쳐 보이기도 하는 등 이중적 모습들을 만난다. 그런데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마치 세상살이의 여러 변수처럼, 쓰고 간 모자 혹은 가방이며 손목시계와 명언의 문구 등이 적나라하게 화면에 드러난다는 것이다.
왜 작가가 수오지심(羞惡之心)이라는 작품 명제를 부여했는지 이해되는 대목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어린 시절 왜 아저씨들은 우물쭈물 살까하는 의구심을 꽤 오랫동안 마음속에 담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아저씨가 된 지금 그러한 나를 보게 된다. 이와 관련한 많은 담론을 제쳐두고서라도 이 관점에서 일단 나는 세상에 대한 명확한 이야기를 전해줄 수 없는 부끄러움이 있다. 작품은 그것에 대한 나의 극복대상으로부터 출발했다.”
한국화가 최익진(CHOI EEK JIN)
◇혼돈, 착시, 반전 메커니즘
작가는 실크 천위에 검은색 잉크를 풀어 스퀴즈(squeeze)로 당겨서 천의 망점사이에 잉크가 빠져오면서 유리뒷면에 착색되는 기법을 적용했다. 경화제의 양에 따라 달라지는 잉크의 점성은 민감하고 호랑이 이미지를 유리에 예민하게 찍어낸다. 스퀴즈의 속도와 누르는 힘에 따라 번짐 효과가 마치 수묵화의 물성과 비슷한 효과를 연출하게 되는 것을 활용한 것이다.
시점이 다르면서 등장하는 이면들의 일상적 오브제들이 작품에 투영되면서 ‘지금 여기’라고 하는 것들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우리 눈에 좌우가 반대로 보일 수밖에 없는 거울의 원리를 감안할 때 혼돈과 착시와 반전의 메커니즘(mechanism)을 통해 인식되는, 정상처럼 보이나 사실은 좌우가 뒤바뀐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은유메시지가 ‘수오지심 호랑이’다.
오늘날 소외가 시대의 주요 키워드로 회자되는 때, 심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고 격리되어 있는 듯 한 이른바 소격(疏隔)한 관계에서 호랑이와 눈빛을 겨루며 공존하는 건재한 ‘나’의 존재감 확인은 의미가 크다 하겠다.
△출처=권동철, 이코노믹리뷰 2015년 4월17일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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