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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화가 김수정 ‘자연의 소리’연작| 한민족 넉넉한 품성의 山河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14. 10. 7. 12:34

 

 

자연의 소리-메밀꽃 핀 언덕, 72.7×53oil on canvas, 2006

 

  

 

아침 안개가 걷히면서 봄 산은 햇살 아래 저마다 울긋불긋 제 모습을 드러냈다. 무슨 까닭으로 연분홍 진달래꽃은 날마다 더욱 타들어만 가는지, 그 옆을 무심히 풀썩 주저앉아 바라보는 산들은 겹치는 듯 조금씩 양보하며 빛을 나누고 서로의 마음을 열어 골짝을 만들고 있었다.

 

매혹적인 꽃 색깔에 취한 새 한 마리가 수직으로 내려오다 정신을 차리고 황급히 힘겹게 창공을 다시 차올랐다. 아이들은 이 광경이 신기한 듯 이리저리 뛰어놀며 저들이 알아서 잘 자라주었고 밤이면 호연지기(浩然之氣)를 품고 마음을 닦은 이들의 이야기들이 꿈으로 피어났다.

 

, , 바다. 그렇게 봄은 언제나 다함없는 노력으로 화사하게 다가왔다. 많은 시간 공들인 밑 작업 위 차분히 배어나오는 아름다운 봄의 색감들. 장구한 세월 흙에 아름다운 기품을 나누어 온 사람들의 정감 따사롭고 아버지의 굵고도 부드러운 혈맥(血脈) 같은 완만한 윤곽선엔 자상한 눈길이 스며 있다.  

 

노란 유채꽃밭 위 흐르는 뭉게구름은 초록 들녘이며 푸른 바다 싱그러운 내음에 시샘을 부렸나. 잠깐 사이 언덕을 넘어가고 말았다. 구름 한 점 없는 산은 스스로를 모두 드러내고 있었다. 그때서야 비로소 이쪽에서 보이는 내 품에 안을 듯한 저 산의 속살. 이별 후 안 사랑처럼 열정과 동경을 깊숙이 품고 흐르는 산은 깊은 정적에 깃들어 이루지 못한 꿈과 아쉬움을 달래고 있지 않은가.

 

화면의 산은 곡선이 겹치면서 높고 깊은 산세를 명쾌하게 요약하고 있다. ··면 그리고 색채만을 조합하고 배열하여 더 이상 생략할 것이 없는 지점에서의 대상이 비로소 산이다. 무수한 색 점을 찍어나가는 표현기법. 일정한 거리를 두고 보면 점은 사라지고 질감만이 감지된다. “그의 점묘법은 색채의 깊이감을 얻으려는데 있다. 서로 다른 색을 점묘로 여러 차례 쌓아올리는 동안 여러 색이 겹쳐지면서 혼색으로 얻을 수 없는 색채의 깊이에 도달하게 된다.”(신항섭 미술평론가  

    

 

자연의 소리-유채 핀 들녘, 60×60oil on canvas, 2006

 

 

그러나 아무도 모른다. 봄이 되어 비로소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가지를 보며 놀라워 할 뿐 고독에 속절없이 드러난 폭풍한설 잔가지를 어느 누가 거들떠보기나 하였는가. “봄비 그치면 저마다 다투어 피어오르는 들꽃들. 저 형형색색 완전한 자신만의 단색. 스스로를 버려 한 띠가 되어 탄탄한 맥()을 잇고 반도의 터를 지켜 온 한국인의 은근한 품성을 안은 저, .”(작가노트)

 

오르기도, 반드시 내려야가야만 하는 산은 진정 힘겨운가. 비정한 세상, 삶은 고통스러운 것 일뿐인가. 그러나 산에는 봉우리가 있다. 그 달콤한 휴식이 를 부르는 것인가. “산이 말한다 그 푸른 눈매 지워/오고 싶거든 어서 오라/태어난 산이거든/그것이 돌아갈 산이므로/다시 나는 산이었다”(고은 시, ) 돌아서는 아쉬움, 남은 자의 통곡이 세월의 이끼에 점점 스러지는 봄 산에 파랗게 민족 혼()이 싹 트고 있다!

 

 

 

출처=이코노믹리뷰 문화전문기자 권동철( 201147일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