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의 발자취(年代記)

〔나의그림 나의생애|서양화가 박기수③, 1996~1999년〕어머니 마음같이 따뜻한 계룡산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14. 4. 22. 23:55

 

 

 

 백두산, 53.0×45.5cm, 1995

 

 

 

계룡산으로 가기위해 짐을 꾸렸다. 약간의 세간과 완성된 또는 미완성 작품이 전부였지만 워낙에 깊은 산골이라 길도 험하고 차도 들어오지 않는 곳이라 손으로 들고 가기에는 불가능했다. 이렇게 저렇게 고민하다가 한 친구얼굴이 떠올랐다. 체력도 좋고 차도 힘이 좋아 그 친구에게 부탁하고자 전후사정 편지를 썼다. 

 

 

그 친구는 기꺼이 그 험한 산중을 차를 가지고 와 주었다. 찻길이 없어짐을 싣고 내려오다가 남의 보리밭을 지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다. 난감했지만 밭을 통과해 갔는데 보리밭 주인이 와서 심하게 화를 냈다. 우리는 난감했고 용서를 빌었다. 그리고 어쩔 수 없었던 사정을 설명했다. 다행히 밭주인은 저간의 사정을 이해해주어 간신히 계룡산을 향할 수 있었다.

 

 

 

 

계룡산, 91.0×72.7cm oil on canvas, 1999

 

 

 

설악산에서 밤새 달려 계룡산에 도착했다. 먹을 거라곤 남은 라면 두 봉지뿐이었는데 친구는 휴식도 취하지 않고 곧바로 되돌아갔다. 그런데 훗날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친구는 그때 고속도로를 올라가다가 엔진이 불에 타서 멈춰버려 렌터카를 부르고 고친 차 값이 많아 나와 돈이 없는 그도 차를 찾을 방법이 없어 정비소 사장에게 그림을 주고 찾아왔노라고 훗날 얘기했다. 그 말을 듣고 너무나 미안하고 고마웠다. 

 

 

계룡산 갑사 입구에 작업의 터를 마련했다. 임시로 지어진 농가 벽돌집이었다. 집 옆에는 시냇물이 흐르는데 고기떼들이 쏜살같이 오가곤 했다. 나는 어망을 넣어 고기를 잡아 말려 반찬도 했다. 어느 날 작업을 끝내고 토끼풀이 많은 둑길에 앉아 휴식을 하며 하늘을 바라보니 기러기가 날고 있었다 

 

 

문득 냇물도 맑은데 오리새끼를 넣어 키우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불현 듯 스쳐 오리 몇 마리를 구해 키웠더니 나름 생활의 활기를 주었다. 그래서 내친김에 설악산에서 이곳으로 짐을 옮겨 준 친구가 경기도 화성에서 염소를 키웠는데 염소 새끼 한 마리를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거절하지 않고 내주어 작업실로 데려왔는데 어미와 친구에게서 떨어져서 매일 울부짖으며 울었다. 

 

 

마음이 안쓰러워 또 다시 그 친구 집에 가서 동료 염소 새끼 한 마리를 더 데려와 두 마리가 되니 형제끼리 무럭무럭 잘 자라주었다. 작업을 하다가 즐겁게 살아가는 동물들을 보면서 참으로 오랜만에 마음에 활기를 얻으면서 계룡산에 올라 산의 정기를 받고 작업에 매진했다.

 

 

 

 

설악산, 72.7×60.6cm, 1999

 

 

 

작업실 주위에는 꽤 많은 화가들이 들어와 있었다. 그 중에는 계룡산 작가로 불리는 신현국 화백도 와 계셨는데 만나서 무척 반가웠다. ‘작가라는 동질감으로 격려하고 아껴주고 용기를 불어넣어 주셨다. 

 

 

설악산은 우리나라 명산으로서 기개가 있는 웅장함이 강한반면 계룡산은 깊은 계곡이 없으면서 안온하면서도 어머니 마음과 같이 내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산이었다. 계룡산은 닭 볕을 쓴 용의 머리와 같다하여 계룡산이라 이름이 붙여졌다는 속설의 산을 나는 닭이나 고양이 등 애완동물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듯 붓 터치를 하였다.

 

 

 

월출산, 유달산도 화폭에 담다

계룡산을 그리다가 나는 산을 좀 더 폭넓게 화폭에 담아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면 불현듯 스케치 도구를 꾸리고 길을 났다. 계룡산이 충청도였기 때문에 길 떠나기는 좋았다. 나는 주로 남쪽에 있는 월출산을 찾아 산과 산을 잇는 구름다리를 건널 때는 간이 콩알만큼 작아졌고 목포 유달산에서는 여장을 풀고 저녁에 세발낙지와 바다의 내음을 맡기도 하며 산에 올라 그 샛노란 개나리와 안개를 감싸는 유달산을 화폭에 담기도 했다. 

 

 

나는 갑사 인근에서 얼마 후 작업실을 옮기게 된다. 마곡사 가는 길이었다. 사곡면 계곡 깊숙한 개울가 달랑 두 집 만 있는 민가에 들어갔다. 빈집에 들어갔는데 옆집에는 방씨라고 불리는 아저씨가 살고 있었다. 풍경이 갑사 쪽보다는 산줄기가 편안하고 개울도 물이 많아 흐른다는 느낌이 들 정도 제법 컸다. 그곳에서 나는 아주 열심히 작업에 정진하였다.

 

 

 

 

 

1997년 당시 부산의 해운대에 있는

현대화랑에서 개인전 때 찍은 사진이다.

 

 

 

돌이켜 보건데 한곳에서 작업을 열심하고 나면 나는 그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옮겨 새로운 에너지를 얻어 작업하였는데 계룡산에서 작업을 어느 정도 했을 무렵 강렬하게 서울에서 작업하고픈 욕망이 있었다. 나는 서울 인사동으로 작업실을 옮기게 된다. 

 

△출처=이코노믹리뷰 문화전문기자 권동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