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봄 친구의 집에서 함께 취하니 빽빽한 나무 기이한 바위에 늦은 꽃이 아직 피었네.
기뻐 웃으며 돌아갈 길 먼 것을 잊고 버드나무 가에 붉은 해가 기우는 것도 아랑곳 않네.
餘春共醉故人家 密樹奇巖尙晚花 歡笑渾忘歸路遠 任敎紅日柳邊斜.1)”
햇빛 남아있는 저녁 가로등 하나 둘 촛불 같은 불빛 켜진다. 마음의 행로 깊은 내면을 스치는, 저 먼 언덕을 타고 상념 실은 트럼펫 중저음이 나지막하게 밀려든다. 오래된 기억과 감정들로부터 출발한 서사(序詞)에서 한 걸음 물러 선 풍경. 무심히 지나치는 다시 또 만나게 되는 사물들. 때론 색채로 어두움으로 크고 작은 면(面)덩어리로 그렇게 체험의 삶으로 녹아 드러내 보이는데….
몸부림인가. 겹겹 위 드러나는 생채기가 모호한 여정에 부유하는 동경(憧憬)처럼 아스라이 번진다. 그 욕망의 결 위로 첼리스트 안자 레흐너(Anja Lechner), 피아니스트 프랑수아 쿠투리에(Francois Couturier)연주 ‘Vague/E la nave va’가 깊은 포옹으로 위로한다. “우리가 음악을 듣는 것은 음만 듣는 것이 아니라 음이 깎아낸 그 사이를 그 여울을 듣는 것이듯. 음악 끄고 지금, 만조의 침묵에 그물을 쳐놓고 침묵이 빠져나가길 기다린다.2)”
◇의식 저 너머의 확장, 문인화
화면엔 따뜻하고 아름답고 자유로운, 새로움을 향해 펼치는 세상모습이 스며있다. “추상적문인화를 가끔씩 생각한다. 하늘과 땅, 자연과 인간이 혼성(混成)된 이상향을 추구한다.”라고 작가는 말했다.
조선후기 문인화가이자 서화비평가 ‘벽오청서도(碧梧淸暑圖)’의 표암 강세황(豹菴 姜世晃,1713~1791). 보편적 삶의 휴머니티를 따뜻한 시선으로 주목했던 표암에 영항을 받은 풍속화거장 단원 김홍도(檀園 金弘道,1745~1806?). 그리고 색채와 명암으로 환영을 만들고 자연과 인간의 삶을 그리는 안준섭 작가 ‘굴속의 노래’에서 선(仙)인식에 남달랐던 표암의 소요유(逍遙遊), 고고한 학예일치의 영혼을 심은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1786~1856), 사의화(寫意畵)의 효시라 할 만한 동굴벽화가 오버랩 된다.
“어두움과 밝음, 행복과 고통 속에서 작가는 늘 그곳을 통과한다. 내가 지나는 공간은 현실이기도 하고 현실과 무관한 가상세계이기도 하다. 그 속에 있는 여러 숨은 감정들 이를테면 켜켜이 다져지거나 불쑥한, 상황들을 발견한다. 내가 꿈꾸고 좌절하고 책망하는 그 사이와 공간에서 문득문득 명징하게 느껴지는 것들…. 밝은 빛으로 나를 올려주고 어두운 빛으로 뉘우치게 하는 그 무엇이 이루는 어떤 맑은 세계를 표현하고 싶다.3)”
[참고문헌]
1)표암유고(豹菴遺稿), 이사명 댁에서 있었던 삼구회 모임의 시(李土明宅三九會韻), 강세황 지음, 김종진 변영섭 정은진 조송식 옮김, 지식산업사刊, 2010.
2)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장석남 시집, 문학과 지성사, 1995刊.
3)안준섭 미술가 ‘굴속의 노래’ 작가의 글, 2023.
[글=권동철 미술전문위원·미술칼럼니스트, 4월호 2023년. 인사이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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