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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동철의 갤러리]한국화가 안영나 울고 웃는 순간에 꽃의 핌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22. 3. 16. 20:50

Flower No Flower-꽃이 피다, 270×170㎝ 한지 먹 채색, 2022

 

울고 웃는 순간에 꽃의 핌

 

“꽃 보려면 그림으로 그려서 보아야 해. 그림은 오래가도 꽃은 수이 시들거든. 더더구나 매화는 본바탕이 경박하여, 바람과 눈 어울리면 이울어 휘날리네.…그대는 못 보았나 시 속의 향이 바로 기름 속의 향일진대, 꽃 그려도 향 그리기 어렵다 말을 마소. 看花要須作畫看 畫可能久花易殘 況復梅花質輕薄 和風並雪飄闌珊.…君不見詩中香是畫中香 休道畫花畫香難.1)

 

가장 치열한 순간에 깨닫는 ‘나’라는 존재에서 참 삶은 시작되는 것인가. 의식의 대롱을 타고 솟구치는 선명한 열망을 개화(開花)의 경이로움에서 만난다. 꽃이 되기까지 그 내부에서 용암처럼 펄펄 끓었던 희로애락(喜怒哀樂)의 투쟁이 낳은 ‘꽃’이라는 외마디 이름!

 

언뜻 무질서하게보이는 화폭에 만개한 대작(大作) ‘매화동백’이 세상을 향해 말을 건넨다. 거시적으로 바라본다면 삶의 순간순간이 절정이듯 먹의 번짐, 채색을 흡수해 내는 포용력, 긋고 칠하는 표현의 승화된 감성이 오롯이 스며있다.

 

화가 안영나 특유의 기운생동(氣韻生動) 필법으로 일필휘지처럼 단박에 펼쳐내는 대담한 구도의 ‘매화동백’은 겨울과 봄을 잇대듯 같은 공간에서 호흡하며 합일되는 정신성이 피워내는 찬란한 꽃의 세계다.

 

얇은 두께의 한지가 품어내는 장대한 화격(畫格)의 수행성(修行性)은 맨살가지에서 매화가 피어나듯 생로병사 업장(業障)을 모두 내려놓은 무위(無爲)의 심상에서 피워낸 새로운 세계의 향연을 선사하고 있는 것과 다름이 없다.

 

서울 조계사 인근 조용한 카페에서 인터뷰 한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저 높은 절벽에서 낙하하는 물줄기를 통해 완전한 인간의식의 해방감을 맛보게 하고 싶었다. 춘하추동, 희로애락, 생로병사의 자연심성을 담아내는 한지손맛이 빚어내는 한국화(韓國畫) 감성전달을 통한 인간적 친밀함에 주력했다.”

 

 

폭포, 180×90㎝(each) 한지 먹 채색, 2008

 

◇어떤 풍격에 구애됨 없는 필세

안영나 작가는 석사논문으로 중국명말청초 화가 팔대산인(八大山人,1624~1703)을 연구한 바 있다. 명나라 왕족 출신으로 문인화 본래의 흉중일기(胸中逸氣)를 강하게 표출하였다. 때문에 그의 작품은 어떠한 풍격(風格)에 구애됨이 없이 필세(筆勢)가 대담분방하고 공간표현이 매우 새롭다.

 

“장강(張康)에 의하면, ‘내가 늘 山人의 書畫를 보니 八大 二字 역시 그러하니 반드시 마치 곡지(哭之), 소지(笑之)의 자의(字意)와 같이 하는 것은 모두 山人자신이 그러한 기분이었기 때문이다.’라고 기술하고 있다.2)

 

 

서울 운현궁(雲峴宮)에서 안영나 작가(AHN YOUNG NA). 사진=권동철

 

이번 전시명제 ‘Flower No Flower-꽃이 피다!’도 명호(名號) 팔대산인 소지(笑之)의 소(笑)에 바탕 하는데 팔대산인의 응축된 화법이 오늘날 안영나 작품세계 근간이 되었다.

 

안영나 작가는 서울예고,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및 동대학원 동양화과 졸업했다. 서원대학교 교수 재직30주년 의미가 담긴 이번 개인전 30회 기념전은 3월22일부터 4월1일까지 서울 광진구 능동로, 세종대학교 광개토관 지하1층 세종아트갤러리(Sejong Art Gallery)에서 열린다.

 

[참고문헌]

1)완당전집, 김정희 著, 제9권 시-이심암의 매화소폭시 뒤에 주제하다(走題李心葊梅花小幅詩後)/한국고전종합DB,신호열 譯,1986.

2)張庚, ‘國朝畫徵錄’ 卷上/八大山人 硏究, 安泳娜 서울대학교 대학원 동양화과,1986.

 

[글=권동철, 3월15일 2022년. 이코노믹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