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수(金興洙,1919~2014)는 함경남도 함흥시에서 출생하여 함흥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다. 재학 중 제16회 ‘조선미술전람회’에 ‘밤의 정물’로 입선했다. 졸업 후 1938년 일본으로 건너가 가와바타화학교(川端画学校)를 거쳐 1944년 도쿄미술학교(東京美術學校) 유화과를 졸업했다. 재학 시기 미나미 쿤조(南熏造)의 지도하에 사생 중심의 교육을 받았으며, 제23회 ‘조선미술전람회’에 ‘밤의 실내정물’로 특선을 하였다.
귀국 후 1955년 도불(1955~1961), 파리에서 ‘재불 외국인 예술가들’전(展)에 참가한 것을 계기로 자신의 작품이 국제적 흐름과 동떨어진 것임을 인식하고 아카데미 그랑드 쇼미에르(Académie de la Grande Chaumière)에서 다시 기초 조형수업을 받았다. 이 시기 에꼴 드 파리(Ecole de Paris)파 작가들 사이에 유행하던 큐비즘의 영향을 받았다.
귀국 후 다시 12년간(1967~1979) 미국 필라델피아, 펜실바니아 등지에서 교육 및 전시 활동을 하였다. 1970년대 말 음양의 조화를 목적으로 구상과 추상의 이분법을 거부하고 이 둘을 접목한 ‘하모니즘(Hamonism)’회화를 발표해 데이빗 살르(David Salle) 같은 신표현주의에서 보이는 포스트모더니즘적 경향에 앞선 예로 주목받기도 했다.
‘한국의 여인들’은 파리 유학기 대표작으로 에콜 드 파리파의 영향을 받으면서 큐비즘적인 단순화를 시도한 작품이다. 나물 캐는 여인들을 소재로 한 군상은 도불 직전에 발표한 ‘한국의 봄(1954)’에서부터 이미 보이는데 중간색 대신 원색을 사용하고 나이프로 사용하여 전체 화면에 통일성을 부여함으로써 형태의 자율성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초기작품으로부터의 변화를 보여준다.
60년대로 들어가면 보다 형태가 해체되는 추상화의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보이는 오리엔탈리즘적, 한국적 소재의 현대화경향은 이후 김흥수 작품의 주요 특징으로 지속된다.<글=권행가>
△권동철=2월27일 2022년, 이코노믹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