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옥연(權玉淵,1923~2011)은 경성제2고등보통학교에서 은사 사토 구니오에게 미술을 배우기 시작했으며, 1940년 ‘선만학생미술전람회’와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입상하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1942년 일본으로 건너간 그는 도쿄 데이코쿠미술학교 서양화과에서 수학했다. 귀국 후 ‘대한민국미술전람회’와 ‘대한미협전’ 등에서 수상하며 작가로서 인정받기 시작했다.
한국전쟁 중 피난지에서 만난 무대미술가 이병복과 결혼한 후 1957년 프랑스 파리로 함께 유학을 떠난다. 일본유학에서 서양미술을 접했던 그는 당시 프랑스의 최신 미술사조였던 앵포르멜과 초현실주의를 접하면서 자신만의 화풍을 구축하기 시작한다.
그는 고미술에 대한 남다른 관심으로 솟대, 토기, 고분 등과 같은 민속적인 소재를 추상적이면서도 초현실적인 화면 구성을 통해 몽환적인 분위기를 표현한다. 1970년대까지 지속된 이러한 화풍은 인물, 정물, 풍경 등의 구상 화풍으로 회귀하면서 특정 미술사조에 분류되는 것이 불가한 독창적인 작가로 평가받게 된다.
‘양지’는 권옥연의 초기 작품세계를 알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작품이다. 서구인의 비례를 보여주는 다섯 명의 여인들이 제각기 다른 포즈를 취하면서도 조화롭게 묘사되어있다.<글=박미화>
△권동철=3월2일 2022. 이코노믹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