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의 발자취(年代記)

[TONG-IN Gallery]서양화가 송광익,SONG KWANG IK,송광익 화백,한지작가 송광익,대구출신 한지추상화가 송광익,Korean paper Artist SONG KWANG IK,宋光翼,통인옥션갤러리[통인화랑]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20. 10. 26. 16:12

전시전경<사진제공=통인화랑>

 

 

[1974~2020, 전시로 본 통인화랑 역사-(29)]송광익의식과 몸의 몰입

 

 

작가 송광익은 종이를 가지고 작업을 한다. 종이에 채색하거나 물감을 뿌리는 것은 작업의 시작일 뿐이다. 그의 작업이 예술작품이라는 결과물을 전제로 한 것임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만든다는 것은 그에게 예술이 그 존재를 드러내는 사건과 마주하게 하는 것이다.

 

공작이라는 말은 그런 의미에서 만들어질 무엇만큼이나 만드는 과정에 대한 강조일 수 있다. 작품에 대한 그의 생각을 말할 때 그가 되뇌는 공작이라는 말은 작업의 과정과 작업 행위가 작품에서 분리될 수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예술가는 만든다는 동사형의 시간을 통해 사물로부터 예술의 드러남을 그리고 작가로 있는 자신을 마주한다. 송광익의 작품은 담담하다. 장식적인 요소는 덜어냈다. 색은 스며들어 머금은 나머지로 있다. 하이데거는 예술작품에 존재하는 사물적 성격을 하부구조와 같은 것으로 보고 사물적 성격에 주목했다. 본래적인 성격이 이러한 하부구조 속에 그리고 하부구조 위에 구축되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송광익(서양화가 송광익,송광익 화백,한지작가 송광익,한지추상화가 송광익,Korean paper Artist SONG KWANG IK,宋光翼,SONG KWANG IK)에게 한지가 갖는 사물성은 자연의 결을 담은 자연스러움과 역사성에 기인한다. 한지에는 태양 아래 바람의 일령임과 함께 너볏이 대지의 숨을 담아 생명을 일궈 온 시간이 있다. 이러한 재료를 작가는 정밀한 잣대로 재단하려 하지 않는다. 한지의 담담함을 담기 위해 채색조차 배면을 이용한다.

 

 

100×60㎝ 한지 아크릴, 2017

 

한지를 지탱하는 섬유질의 얽힘으로 색을 충분히 머금지 못하는 부분이 있더라도 그 빈자리를 굳이 색을 더해 채우려 하지 않는다. 한지의 고유한 결을 따라 예술이 머무는 자리를 더듬을 뿐이다. 종이를 채색하여 마름질해 놓고 나면 손에 닿는 촉감을 따라 화면을 구성하는 작업이 시작된다.

 

마름질한 한지는 높으면 높은대로, 낮으면 낮은대로 서로를 맞대어 화면을 이룬다. 판넬 위에 골을 이루는 형태는 얇은 막과 같은 한지를 세우기 위해 풀을 발라 맞물리게 하면서 생긴다. 소리가 소리를 부르듯 선은 선을 불러 늘어선다. 때로는 빗금으로 때로는 수직선으로 그렇게 손은 그 재료가 가진 물성으로부터 있음의 본연한 모습을 알아서 맞추어 나간다.

 

송광익 작가에게 재료는 한낱 대상에 불과한 것으로 머물지 않는다. 작업에 대한 방향과 계획이 결정되면 의식과 몸은 하나가 되어 몰입하게 된다고 작가는 말한다. 그 행위 가운데 온전히 있을 때 작가의 삶뿐만 아니라 그를 둘러싼 세계로부터 존재는 드러난다.

 

하나에 하나를 더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에 담긴 이야기가 화면에 맺히고 서린다. 그것은 시간의 흔적을 거두어 내고 만나는 고고학적 사건이 아니라 몸이 만나는 시간과 공간의 이야기이다.

 

 

지물(紙物), 140×110㎝ 한지 먹, 2017

 

한지를 만지는 그의 손은, 그의 몸은, 그를 둘러싼 세계와 함께 사유한다. 메를로 퐁티가 말하듯 그의 몸이 깨어날 때, 연결된 몸들도, 타자들도 함께 깨어난다. 그들은 나라는 장소에 출몰하는 존재요. 그들의 존재는 내가 출몰하는 장소다. 그리고 나는 그들과 함께 현존하는 모종의 큰 존재에 출몰한다.

 

퐁티의 이러한 생각처럼 작가가 바라보는 세계는 나와 동떨어진 대상으로 관찰되는 것이 아니라 작가에게 이미 옮아 와 있고 작가는 자신이 마주한 세계로 옮아 가 있다. 산이, 바람이, 물이 스며있지 않은 나를 생각할 수 없듯이 내가 스며있지 않은 구름을, 너를, 재료를 생각할 수 없다. 퐁티는 질감, , , 깊이가 우리 앞에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이것들이 우리 몸 안에서 반향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요, 우리 몸이 이것들을 환영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송광익에게 한지는 단순히 작품을 구성하는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 작가의 삶과 연결되며 존재의 진리를 드러내는 데로 들어선다.

 

메를로 퐁티는 화가를 세계에 자기 몸을 빌려주고 그림을 얻는 자로 정의한다. 이때 예술은 구축이나 조작이 아니라 숨겨진 힘들을 간직한 일상적 시지각 속에서 존재 이전의 비밀을 일깨우는 빛의 목소리 같은 외침이 된다.

 

실낱같은 시간에 매달려 펼쳐진 화면은 한지와 한지 사이의 공간으로 진동한다. 세워진 한지의 높이가 마련한 깊이는 다양한 울림을 내어준다.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한지를 세우는 간격에 따라 선이 되기도 하고 면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서정적 풍경 너머로 자연으로 있는 삶이 언뜻 어린다.

 

=배태주 미술평론(미학/철학)

전시=통인옥션갤러리(TONG-IN Auction Gallery Seoul), 45~302017

 

정리=권동철, 이코노믹리뷰 85,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