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의 발자취(年代記)

[나의일상 나의회화]송수련⑬,갤러리 우덕,吾堂 安東淑,AHN DONG SOOK,오당 안동숙,안동숙 화백,이길원,주민숙 작가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20. 3. 15. 16:13

2001년 갤러리 우덕 개인전. 이길원, 안동숙 선생님과 주민숙 작가<사진;송수련 작가>



한국화가의 정체성 나름의 대답

 

-1980년대 후반 모교로 올라오셨죠? 선생님의 추상 작업 역시 그전과 그 후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진주의 자연 속에서 응축시킨 어떤 요소들이 발현된 것으로 볼 수 있겠지요?

 

제가 모교인 중앙대학교로 직장을 옮긴 것은 19879월초예요. 그때는 회화과로, 아직 한국화와 서양화가 나뉘기 전인데, 곧바로 분과가 되면서 지금까지 한국화학과에 재직하고 있지요.

 

제 그림의 변화와 관련해서는 지적하신 부분이 근거가 있습니다. 1990년대부터 채색을 사용하면서 기하학적 구도에서 벗어났거든요. 색에 대한 탐구를 시작한 것이죠.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색의 감성을 탐구한 것입니다.

 

제 속의 열정과 함께 형언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감정이 색을 통해서야 비로소 모습을 갖추었습니다. 그래서 제 자신을 치유한다는 차원에서 색깔에 대한 애정이 솟아나는 것이었습니다.

 

-기법에도 변화가 보입니다. 특히 화면에 마티에르를 표현하는 방식에 대한 관심이 두드러지기 시작합니다.

 

그리면 그릴수록 세계와 삶 그리고 그린다는 행위 자체의 근원적인 물음 때문에 백색 화면에 대한 두려움이 커졌어요. 어떤 조형을 염두에 두면, 오히려 종이 위에 붓을 대기가 더 어려 있어요. 과연 그게 정말 본질이며 핵심인지에 대한 물음이 증폭되어서죠.

 

그래서 종이에 일단 밑 작업으로 마티에르를 만든 뒤에야 작업을 시작하자고 저 스스로를 설득했더니, 백색 화면에 대한 두려움이 좀 가셨습니다. 분청사기의 표현기법 같은 것이 이때 시작되었어요. 부담을 덜고서 거칠게 밑 작업을 한 뒤에 색으로 덮고서는 그것을 긁어내는 방식이죠. 새로운 화면이 드러나더군요.

 


송수련 作


-우연과 필연이 교차하는 마티에르라 할 수 있네요. 텅 빈 무서운 공허가 아닌, 그래도 뭔가가 채워진 화면일 테니까요. 우연에 기대면서 필연의 부담을 던 것이겠죠. 우연이란 막연함이 아니라 필연을 찾아낼 때까지의 반복이니까요.

 

, 맞아요. 그 연장선에서 이번에는 앞에서 그린 뒤 화면 뒤에서 색을 채워 넣는 방식으로 작업을 해보았어요. 전통회화의 한기법인 배채법과 백발법이죠. 이 기법 역시 전적으로 텅 빈 화포의 전면에서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을 덜어주더군요.

 

동시에 한국화가로서의 나의 정체성이 무엇인가에 대한 제 나름의 대답이기도 했습니다.

 

=박철화, 중앙대학교 예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정리=권동철, 2020315일 이코노믹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