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가의 초상-무위당, 162.2×130.3㎝ 캔버스에 유채, 2018
모험과 유희 생명의 어울림
“그러나 나는 생각이 든다, 오, 나의 정신아, 내가 이미 너를 전혀 다른 식으로 사랑했었다는 생각이! 너는 남들이 아니라 너 자신에 대해 생각나게 하며, 또 너는 언제나 더욱 다른 어떤 것과도 닮지 않게 되어 간다. 훨씬 더 같은 것이 나보다 더 나 같은 것이 되어간다. 오 내것―그러나 아직은 완전히 내가 아닌 것!”<발레리 선집, 詩-자아어로부터의 번역, 폴 발레리(Paul Valery)지음, 박은수 옮김, 을유문화사刊>
사람의 고유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의미망으로서의 얼굴이다. 물감과 손의 촉각성이 형성해낸, 온몸으로 그려내는 신체성에서 비롯되는 유기적 운율의 인상들은 어떤 느낌의 풍만함으로 밀려든다. 휘둘러지고 칠해진 과정에서 창조되는 흔적으로서 함축된 대상 그 구성들은, 순박한 유희로 읽혀지는 세상에 대한 친화감의 드러냄이기도 하다. 이른바 ‘얼굴성에 대한 존재론적 물음’의 회화적형상화다.
작가는 “주체 너머를 향하고, 얼굴기호 밖을 바라보고, 회화의 규정성을 탈각했다. 그야말로 의정(擬定)덩어리가 될 뿐이었다. 선과 색 그리고 화폭 안팎의 연기(緣起)의 망(網)속에서 주체 없는 그림이 사건의 복합체로 늘 새롭게 서있다”라고 고백한다.
130.3×162.2㎝
그의 ‘자화상’, ‘어느 혁명가의 초상’연작 등의 아우라는 인물이미지와 마음의 본바탕을 진술한다. 동시에 인간존재론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을 함의하고 내 안의 새로운 탐험모드를 찾아내는 몸부림의 산물이기도하다.
그것은 잃어버린 자아에 대한 맹성(猛省)을 통한 휴머니티의 참됨을 지향하는 모험으로써의 통찰위에 그려진, ‘얼굴성’이다.
“물은 멈추지 않고 흐르되 만상을 만나 만변하며 흘러간다. 단숨에 그리되 수많은 순간들이 모이면 충돌하고 한 호흡지간에 그려진 하나의 살아있는 생명이 일어난다. 획이 가는 대로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자연이 이루어진다. 그 과정에서 획과 획의 부조화의 조화, 불균형의 균형이 공감각(共感覺)적으로 잠시 멈추어선 순간이 나의 그림이다.”
162.2×130.3㎝
◇관념과 실천의 모험을 기리며
작가(김상표 작가,KIM SANG PYO,金相杓)는 줄곧 인간과 조직 그리고 세계에 대해 가졌던 인문, 사회학적 고민들을 예술로 풀어내는 ‘화가되기’의 모험을 이어왔다. 특히 미래세대에게 지속가능한 삶과 세계를 제시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음을 주장한 작가의 주요 학술적 테제로서의 공동체적 기업에 대한 연구 그리고 관련저서와 그림그리기가 연동되어 있다.
때문에 이 맥락은 경영학자이자 화가 김상표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주변세계(Umwelt)를 이해하는 중요한 잣대가 된다. 생명운동가 무위당 장일순(張壹淳, 1928~1994)의 회화적형상화 역시 ‘장일순의 관념과 실천의 모험을 기리며’ 절대적 타자성을 향해 자신을 열려는 작가의 지난한 몸부림흔적과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이 우주 속에서는 독자적인 사건이란 아무것도 없다. 각각의 사건들은 서로 의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만물 속에 서로 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서로를 포섭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은 상(象)인 동시에 다른 것들의 반사경도 된다.”<화이트헤드와 화엄형이상학(Whitehead und Huayen-Metaphysik), 김진 지음, 울산대학교출판부刊>
△글=권동철, 인사이트코리아 2020년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