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자료

한국연극의 巨人-이해랑(李海浪)⑪‥세계연극 메카 뉴욕,액터즈 스튜디오(Actor's studio),엘리아 카잔, 리 스트라스버그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18. 12. 21. 19:51


미국무성 초청 방미 때 여의도공항에서(좌측 김정열 공참총장)


이해랑은 초대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 된다. 예술원은 19528월 피난지 부산의 국회에서 문화보호법(文化保護法)이 제정, 공포됨에 따라 예술의 향상, 발전을 도모하고 예술가를 우대할 목적으로 설립된 기관이었다. 19543월에 등록문화인들이 투표를 해서 각 분야 25명의 예술원 회원이 탄생했는데 그가 최고 득표를 받은 것이다. 이때 연극 분야에서는 그와 함께 유치진, 오진 등이 뽑혔고, 곧이어 서항석, 박진, 변기종 등 중진 연극인들이 선출되었다. 이로써 그는 유치진의 뒤를 잇는 연극계 지도자로 확고한 위치에 올라서게 된다.

 

그동안 내가 연극을 하면서 처자를 데리고 하루 세 끼 끼니를 못 때우기도 하고 겨울에 구공탄이 떨어져 추위에 떨면서 지냈었다. 그러다가 처자를 가친에게 보내 생활비가 없다고 동정을 구하기도 했다. 그러던 부친이 그때 가서는 보는 눈이 달라진 것 같았다. 1년 동안 한꺼번에 예술원 회원이 되고 서울시문화상을 타고 더욱이 미국까지 초청되지 않았는가 말이다. 거기 몇 사람 안 되는 예술가에 끼어 초청을 받았다는 걸 알고 우리 선친은 몹시 기뻐했다.”

 


국무성 초청 당시 하버드 대학교에 방문한 사진과 사진설명(앞뒷면)


액터즈 스튜디오(Actor's studio)

이해랑이 인생에 또 한 번의 중요한 변화를 주었던 미국행도 흥미 있는 사건이었다. 왜냐하면 그의 생애에 있어서 최초의 서양체험이고 동시에 그가 그렇게도 동경해 마지않던 서양 현대극 무대를 접하는 소중한 기회기 때문이다.

 

그는 2주간의 미국 소개 스케줄을 마치는 둥 마는 둥하고 세계 연극의 메카 뉴욕으로 달려갔다. 그는 뉴욕에 연구차 와 있던 김은우(金恩雨, 이화여자학교 교수), 이종우(李鍾雨, 고려대학교 교수), 이동원(李東元, 전 외무장관) 등과 어울리면서 몇 달 동안 연극구경만 다녔다. 그가 감명 받고 공감한 것은 브로드웨이의 정통연극이었다. 그런 대표적인 공연들이 다름 아닌 엘리아 카잔의 연출작품이었다면서 이렇게 썼다.

 

내가 엘리아 카잔이 연출한 작품을 보고 놀란 것은 그의 모든 작품이 예외 없이 리얼리즘에 투철했다는 것이다. 배우의 연기지도 작품해석이 리얼리즘에 상당히 투철한 것을 보고 나는 많은 것을 뉘우치지 않을 수 없었다. (……) 엘리아 카잔의 그 철저한 리얼리즘 연극연출을 보고선 그동안 내가 한국서 해오던 연극 행동에 대해 뼈아픈 반성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 방문 중 할리우드에서

 

그는 엘리아 카잔과 함께 액터즈 스튜디오(Actor's studio)를 하고 있는 리 스트라스버그를 찾아가기로 했다.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수많은 독서로 미국 최고의 연극교사로 인정받고 있는 그가 뉴욕 브로드웨이 52번가에서 엘리아 카잔과 액터즈 스튜디오를 열고 있었다. 방문한 소감을 그는 이렇게 썼다.

 

전면에 불이 켜지고 학교 교사가 올라서는 교단(校壇)만큼의 작은 무대 위에 남녀가 올라서 연극을 하고 있었다. 연극전편을 다 하는 게 아니고 어느 대목을 공부해 와서 그걸 시연하면 여러 사람의 맨 앞에 자리한 리 스트라스버그를 중심으로 질문을 하고 토론을 하고 있었다. 내가 일찍이 보지 못하던 연극 연습 교정이랄까. 그것을 보고 ! 이게 연극을 공부하는 것이 구나통감했다. 왜 우리는 이렇게 공부하는 걸 몰랐었나, 해보지도 못 했던가 후회하기도 했다.” 


[정리:권동철]/주간한국 201812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