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tation-The Red, 116.8×72.7㎝ Acrylic on Canvas, 2018
물살의 기 영혼이 있는 하얀 나무
“그들은 모래와 바람과 빛과 밤의 남자와 여자들이었다. 그들은 마치 꿈속에서처럼 모래언덕 꼭대기에 나타났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서 내려 온 듯, 공간의 혹독함이 사지 속에 배인 듯한 모습으로. 허기, 입술이 갈라 터져 피가 배어나오는 갈증, 태양만이 번득이는 잔혹한 침묵, 추운 밤, 은하수의 섬광 그리고 달, 이 모든 것을 그들은 몸속에 품고 있었다.”<사막, 르 클레지오(J.M.G Le Clézio)지음, 홍상희 옮김, 문학동네 刊>
원대한 묵언의 기록을 숨겨 둔 듯, 지상의 모든 것들이 바람으로 이루어지는 초상(肖像)의 대지, 사막. 영혼이 존재하는 하얀 나무들은 물속까지 정신의 뿌리를 꽂은 채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훌륭한 가교자로 서 있다.
눈부신 햇살이 드리운 물결엔 밤하늘 알알이 박힌 영롱한 은하수가 바람에 나풀거리는 성숙한 나뭇잎 그늘아래 단잠을 자고 있을 것만 같다. 그리고 어디론가 향하는 알갱이모양 오브제와 두껍게 물감을 올린 시크하게 패인 모래구멍에 드러나는 고단한 일상의 파편들….
“지난 몇 년간 고통이 회오리바람처럼 지나갔다. 사람과 삶에 대한 상념에 잠겨 있었다. 그즈음 세상사 희로애락 얘기들을 나누며 밝은 기운과 환한 세상으로 나아가는 교감의 창(窓)이 열렸다. 이른 봄 중앙아시아사막을 여행했다. 시시때때로 넘실거리듯 적막의 건조한 율동들이 마치 현실세계와 다른 느낌으로 밀려들었다. 그때 메마르고 척박한 환경에서 얻은 생명의 색감 레드(red)가 심중으로 들어왔다. 푸른 하늘의 정기를 받으며 희망을 보여주는 하얀 나무와 이제 동감하고 싶다.”
90.9×72.7㎝
◇그림을 그리는 자체가 瞑想
서경자 작가는 홍익대학교 서양화과 및 동대학원 판화과 졸업했다. 인체크로키를 15년 한 후 1999년 모인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가졌다. 그리고 2003년 예술의전당판화미술제에 출품하면서 판화에 심취하여 회화작품과 함께 전시하게 된다. 이후 2005년 제2회 베이징비엔날레(北京國際美術雙年展)에 출품, 전시작품이 북경미술관에 소장된다.
2007년 중국베이징 798예술구 에 있는 갤러리 ‘9아트스페이스’초대전에서 현지콜렉터들에게 호평 받았다. 2011년 예술의전당한가람미술관 제1관에서 대부분 200호 내외 대형작품 전시로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이번 ‘The Red in Blue’개인전은 태안문화회관에서 가진 한국예총초대전 이후 5년만의 개인전이다. 100~200호 대작15점을 비롯하여 총45여점으로 6월22일부터 7월2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7관에서 연다. 작가는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방식은 명상(Meditation)이 본바탕”이라고 했다.
서경자(徐敬子)화백
이는 2005~2017년까지 지속적으로 발표해 온 푸른 이상향의 이미지 ‘The Blue’연작과 최근작에 이르기까지 서경자 화백의 작품세계 기저를 관통하는 사유흐름과 다름없다. “그림을 그린다는 행위 그 자체가 명상이다. 이번작품을 하면서 매일같이 동이 트는 것을 보고 잠이 들었다. 치열했지만 심적으론 여유로웠다.
예전에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앞섰는데 지금은 내가 작품 속에 들어갔으면 했다. 자연스러운 평안한 감정의 상태에서 몰입한 것이다.” 한편 인사동 조용한 찻집에서 인터뷰하면서 ‘화가의 길’에 대한 고견을 청했다. “젊은 시절 잠시 직장생활도 했지만 그림 외적인 것에서 크게 만족감을 얻지 못했다. 결혼하고 좀 아팠었는데 그림을 다시 시작하면서 좋아졌다. 그 이후부터 그리지 않으면 몸이 먼저 말을 한다.”
권동철 미술전문기자/주간한국 2018년 6월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