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조선인이 거주했던 숙소와 제방 (오른쪽)지옥계단
사람만이 절망이면서 희망이다
“우리는 기억하리라 이 세상을 폭풍우로 두들겨패야 할 때가 있다 이 세상을 성난 해일로 덮쳐야할 때가 있다 비록 흰 거품 물고 물러서지만 오늘의 썰물로 오늘을 버리지 말자/오늘이야말로 과거와 미래의 엄연한 실재 아니냐/우리는 기억하리라 기억해 자식에게 전하리라 오 끝없는 파도의 민족이여”<고은 詩 오늘의 썰물, 조국의 별, 창비 刊>
긴 세월 암묵(暗默)의 장막을 휘둘러 놓은 듯 거친 해풍이 불때마다 순간순간 침통한 흉상(胸像)이 드러나는 듯 검푸른 물결이 흔들린다. 일본패망과 동시에 멈춰버린 공간 그리고 결국 일본인에 의해 밝혀졌지만 역사도 기억해 주지 않은 역사의 바깥에 있었던 조선인의 자취….
아! 군함도
멀리서 보면 군함 같다고 해서 ‘군칸지마(ぐんかんじま)’로도 불리는 일본 나가사키항구 서남쪽 군함도(軍艦島, 하시마 섬). 그곳은 구 미쓰비시 하시마 해저탄광이 있는 곳이다. 태평양전쟁말기 석탄채굴을 위해 식민지조선인들이 강제징용 당해 지옥 같은 노동에 시달렸던 바로 그 ‘지옥섬’이다. 사진 속 아주 가파른 지옥계단 앞 널브러진 돌들.
폐석이 아니라 그 마당에 엎어지고 쓰러져 가혹하게 매질 당했을 앙상한 조선 사람으로 보이는 것은 왜 일까. 권리는 없고 의무만 짊어진 조선인들의 통한, 조선의 아픈 역사가 말을 걸어오는 듯하다. 위층은 일본인, 바닷가 반 지하에 조선인들이 거주한 곳. 파도가 치면 물이 들어오는 열악한 환경에 벌레가 득실거리고 도망을 대비해 쳐 놓은 철망사이 비릿한 내음이 코를 찌르는 듯하다.
조선인 숙소와 앞마당
“2008년 1월과 4월에 시도했으나 섬 주변만 빙빙 돌았을 뿐 들어가는 것에 실패했다. 그때 석탄 모양 같이 철렁철렁하는 검은 파도가 피울음으로 들려 내 가슴에 박혔다. 그 소리를 듣고 돌아왔는데 깊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만약 잡히는 순간 추방당하고 다시는 일본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겠지만 나는 반드시 그 섬에 올라가야만 했다.
그리고 세 번째 성공했다. 그해 7월에 몰래 들어가 약2시간30분 동안 ‘조선인 숙소’를 중심에 놓고 촬영했다. 그것이 작가로서 나의 주된 관심사였다. 내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상처를 받은 그들이 누군가 자신들을 기억해 주기를 바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숨 막히는 현장의 긴장 속에서 나는 짧게나마 먼저 묵념했다. “너무 늦게 왔다. 당신들을 내가 기억 하겠다!”라고. 미친 듯이 카메라를 들고 뛰어다닌 곳곳마다 전쟁 준비로 혹사당하던 아우성들이 생생히 들리는 듯했다.”
이재갑 작가
◇과거 일을 지금 소리 내야 현재
이재갑 작가는 10회 개인전을 가졌고 2016년 제2회 수림사진문화상을 수상하였다. 동강사진박물관, 일민미술관 등에 작품이 소장 되어있다. “군함도를 촬영하고 사진을 정리하면서 나는 한을 풀어주지는 못했지만 그들을 만났다고 생각했다. 그런 마음이 들었다. 나는 과거에 있었던 일을 찍지만 청산되지 않은 것을 지금 소리 내고 바깥으로 얘기해야만 그것이 현재가 된다.”
이번 ‘군함도-미쓰비시 쿤칸지마’초대전은 사진 40여점과 영상 그리고 나가사키현 오카마사하루자료관 소장 자료를 대여, 조선인숙소(함바)를 재현 설치했다. 지난 8월14일 오픈하여 11월30일까지 부산시 남구 대연동 소재,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 6층 기획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다. 한편 인사동 한 찻집에서 만나 인터뷰한 그에게 사진가로서의 소명에 대해 물어보았다.
“내 작업신념은 인간의 본성에 대해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일본에 가면 일본사람을 만나지 않고 일본에 있는 사람을 만난다. 이념문제가 아니라 본래의 품성을 공유하며 화해와 치유를 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라고 스스로 믿는다.”
권동철 미술전문기자/주간한국 2017년 8월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