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음악 인문학

서양화가 김봉태(플렉시글라스,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아르투르 루빈슈타인,Artur Rubinstein,그리그,Grieg, 김봉태화백,김봉태작가)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17. 5. 18. 17:12


90×180




소통과 공감 충만한 기쁨의 앙상블

 

 

모든 기호는 기원적(본질적)으로 반복 구조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기호의 허구적인 사용과 실제적인 사용 사이에 있다고 믿어온 경계는 위협받는다. 기호는 본질적으로 허구로 짜여 지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부터, 표지적 의사 통화에 관계되든, 아니면 표현에 관계되든, 내면적 언어와 외면적 언어, 혹은 내면적 언어가 있다는 가정 하에, 실제 언어와 허구의 언어를 뚜렷하게 구별 지을 수 있는 확실한 판단기준은 없어진다.”<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 해체, 김보현 편역, 문예출판사 >


 

물방울이다. 순수 하늘이 내린 동글한 물의 투명이, 물의 처음 그 호수에 낙하한다. 가는 소리와 번짐의 아우라가 마침내 하나가 되어 허공에 솟았다. 소리, 그 소리의 울림은 순식간에 회오리가 몰아치듯 황홀한 의식의 물의 노래를 빚는다. 아련히 물안개는 피어오르고 숲은 그 울림을 시간의 심연으로 호흡하기 시작했다. 호수와 대지와 산과 바다위로 멜로디가 번져 나갈 때 조금씩 안개가 걷히고 아르투르 루빈슈타인(Artur Rubinstein)이 연주한 그리그(Grieg, 1843~1907)의 피아노협주곡(Piano Concerto in A minor, Op16)이 흘렀다.

 

우르르 쾅쾅. 일순, 번개가 내리치고 굵은 빗발울이 쏟아져 내렸다. 먹구름 몰아치고 분노와 절규와 간절한 무엇들이 아우성처럼 일제히 한 곳으로 몰아치는 듯 했다. 검은 폭풍우는 순식간에 모든 것을 휩쓸고 난 다음에야, 잠잠해졌다. 격렬함이 지난 후 부드러운 선율로 상처를 보듬는 앙상블처럼 구불구불한 좁고 긴 피오르(fjord)에 빨강, 노랑, 초록으로 단장한 작은 배 하나가 말간 하늘에 나부끼는 나비처럼 느리게 물살을 갈랐다.

 

은빛 물 위에 꽃잎 한 장 떨어지는 그 가냘픈 촉감으로 언제나처럼 아침이 왔다. 햇살은 부드러워 차라리 우아하고 온순하게 나뭇잎사이로 스며들었다. 고혹의 리듬은 감미롭고 바람은 고요한데 따스한 햇살에 번지는 커피 향처럼 생애 제일 큰 기쁨이 지금이라는 충만의 음성이 샘솟는 것이었다.



 

Dancing box, 90×180Acrylic & Tape on Frosted Plexiglas, 2009




자유로움, 우주기운의 본바탕

반투명재료 플렉시글라스(plexiglass)에 얹어지는 원색의 색채감은 유연성을 높여주며 마음의 줄기로 이끌고 광활한 우주공간을 유영하는 일루전 효과를 자아내 끊임없이 솟아나는 생동의 감화를 불러일으킨다.

 

화백이 1960년대 미국 대학원시절, 버려진 나무판에서 기하학적 영감을 순도 높게 다진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추상작업 외길에서 구현해낸 화면은 선과 면으로 공간에 내재(immanence)된 감각리듬과 하모니를 이룬다.

 

그런 운동성은 흐름을 전체적으로 아우르며 관계망으로 연결된다. 흥겨움에 춤추는 심플하고 모던한 이 작용은 나뭇잎이 바람에 날리는 수직미학과 에메랄드와 핑크빛깔, 로열블루 등의 물결이 출렁이는 저 다채롭고 황홀한 해안의 수평물빛과, 조우한다.

 

그야말로 원초적 우주기운의 본바탕임을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일생에 거쳐 평면적인 회화보다 3차원의 입체성으로 추구되어왔다. 회화와 조각사이, 추상과 구상사이의 경계에서 늘 고민하였으며 윈도우연작이 되었든 ‘Dancing Box(춤추는 상자)’가 되었든 그것의 테두리 안과 밖을 넘나들며 틀을 벗어난 자유로움을 갈구하였다.”

    



120×90(each)



이와 함께 성()과 속()의 공간을 그림으로 표현한 만다라(曼茶羅)의 어울림배열 역시 작가가 주목하는 기하학적 미의식이 추구하는 휴머니티와 다르지 않다. 신라 감은사(感恩寺)의 태극도형 등에 나타나는 괘() 또한 돈과 명예, 권력과 사랑에 대한 숙명을 표징 한다. 동시에 수()와 목() 등이 서로를 북돋우는 음양오행설의 융화인식체계와 다름 아닌 것이다.

 

이뿐인가. 강렬한 채도의 메시지인 적색, 고결한 생명성의 청색, 신령의 광배 금빛황색과 본질에의 원류 검은색 그리고 처녀림에 스미는 햇발 같은 초월성의 흰색 등의 무신도(巫神圖) 역시 우주와 존재의미를 갈구하는 한민족정신사와 맞닿아 있다.

 

화백은 이렇게 전했다. “세계유수 원시인의 작품은 원색적이고 기하학적이다. 국제적으로 서로가 이해하기 좋은 것은 누구나 그 형태를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오방색을 비롯한 면면히 내려오는 정신의 줄기와 영적요소 등이 합쳐져 작품에 함축시키려 했다. 신바람의 춤을 통해 진정한 생의 환희를 맛보는 소통과 공감의 율동으로 승화되기를 기원한다.”

    

 

=권동철, 인사이트코리아(InsightKorea), 2017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