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TO FIND LOST TIME), 45×30㎝,
Woodcut & Lithography, 2012
불행한 기억은 가능한 떠올리지 말라. 괜히 우울해질 뿐 더 나아질 것이 없다. 과거의 좋은 기억이 현재이고 현재의 삶이 행복한 미래를 만든다. 그러니 행복 하고 싶으면 좋은 기억을 떠올려라. “실제로 모든 사물을 지속(持續)의 상하(相下, Sub Specie Durationis)에서 사유하고 지각하는데 익숙해질수록 속으로 몰입하게 된다. 그리고 여기에 침잠할수록 우리는 비록 선천적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참여하고 있는 원리가 있는 쪽으로 향하게 된다. 이 원리의 영원성은 불변성의 영원성이 아니라, 생명의 영원성이다.”《사유와 운동(La pensee et le mouvant), 앙리 베르그송(Henri Bergson) 지음, 이광래 옮김, 문예출판사》
60×45㎝, Woodcut & Collagraph, 2011
긴 생머리인가. 매끈한 머릿결에 꽃을 꽂고 웃고 있는 좌측작품의 여인모습이 풋풋한 건강미를 전한다. 어느 날 여성지 책장을 무심히 넘기다가 시선이 머문다. 어디서 본 듯한 익숙한 분위기의 사진위로 불현 듯 어린 시절의 ‘나’가 오버랩 된 것이다. 집을 나와 오솔길이 나 있는 나지막한 산을 넘으면 학교가 있었다. 등하교를 하면서 봄 산에 피어난 진달래꽃으로 머리를 장식하고 싶었던 소녀시절의 꿈이었다.
그런데 세월이 훌쩍 지난 지금에 눈과 입이 약간 몽환적인 해맑게 웃고 있는 이 여인에 중첩된 ‘나’가 있었던 것이다. 작가는 “소녀 적 개울가에서 머리를 감겨주던 도시로 나간 이웃집언니가 작업 내내 떠올랐었다”라고 회상했다. 나무 위에 그려서 찍은 리소그래피(Lithography)작품이다. 우측은 미디엄 블루(Medium Blue)를 배경으로 앉았다라고, 서 있다고 할 수도 없는 조금은 어정쩡한 순간의 자세를 포착한 여인이다.
옷깃을 여미는 듯 다소곳하지만 사색에 잠긴 눈빛은 깊은 심상기억의 물줄기를 따라 흐르는 것만 같은 우아미를 풍긴다. 머리위로 꽃들이 만발한데 미지에 대한 꿈을 꽃이라 한다면 여인은 아름다운 꿈을 꾸고 있는 것이리라. 나무에 판각(板刻)을 하고 그 다음 다색으로 찍었다. ‘She’연작은 이미 지나간 시간이지만 다시 떠올려서 그때 그 순간의 ‘나’를 찾는 여인의 내재된 꿈을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다.
100×60㎝, Woodcut & Serigraphy, 2011
세로의 긴 목판화작품엔 여인과 불상이 있다. 불상이 둘이기도하고 하나이기도 한 것으로 읽혀지듯 이미지는 불상을 대입시켰지만 불상이라는 상징성을 통해 모든 사람들의 어머니나 할머니가 조합된 이미지다. 어머니의 마음이 ‘나’를 지켜주고 미래를 지켜나가는 것인데 작품에서 그것을 만나고 가슴속에 담아가기를 바라는 의도가 담겨있다.
또 누워있는 여인은 현재성이다. 그러니까 순간적으로 뜬금없이 떠오르는 기억, 이른바 ‘무의지적 기억’으로도 불리는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중요하게 작용하는 ‘비의도적 기억(memoire involontaire)’을 표현한 것이다. 곧 시간의 동시성을 나타낸다.
“어머니는 자기의 전 존재를 뒤흔드는 듯 한 느낌 속에서 애써 이러한 교활하고 비겁하며 유치한 불꽃들을 진정시키고, 자신에게 명령조로 말했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그러자 곧 무겁던 마음도 가벼워졌다. 기운을 차린 그녀는 덧붙였다. <아들이름에 먹칠을 할 수 없지, 두려울 게 뭐 있나!>”《어머니, 막심 고리끼(Maksim Gor′kii) 著, 최윤락 옮김, 열린책들》
조향숙 작가
◇목판화, 자신을 비워가는 修行
화가 조향숙(Jo Hyang-Sook)작가는 홍익대학교 일반대학원에서 판화를 전공(미술학 박사)했다. 현재 홍익대 미술대학원에 출강하고 있다. 2000~2015년 사이 작품들 중 엄선한 판화와 판각작품 25여점을 선보이는 이번 열세 번째 초대개인전은 서울시 종로구 북촌로 소재, 갤러리 한옥(Gallery HANOK)에서 7월29~8월7일까지 열린다.
한편 40여 년 동안 목판화작업에 천착해 온 작가에게 화업의 소회를 물어보았다. “목판화라는 것 자체가 기본적으로 칼로 파내어 하나하나씩 이미지를 찾아가는 것이다. 그러니 현재에서 과거를 만나는 이미지가 나올 수 있는데 자신을 비워가는 수행과정이기도 하다. 필경, 가장 본질적인 순간들이 기억에 남을 것인데 그런 점에서 잃어버린, 지나간 시간을 되찾는 것이기도 하다. 젊은 날엔 학교와 작품생활을 병행했기 때문에 항상 작업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지만 몰입할 수 있는 지금이 더 행복하다.”
[글=데일리한국 권동철 미술전문기자, 주간한국, 2016년 8월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