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한국]지면기사

〔Before and After〕 화가 정현숙,한스 게오르크 가다머,펜실베니아대학교 미술대학원,Hans-Georg Gadamer,정현숙 작가,대진대학교 현대조형학부)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16. 7. 25. 22:30


50×150, 2009



맑고 보얗다. 보름달처럼 그렇게 둥글둥글한 달항아리 백자대호(白瓷大壺). 까칠한 성깔도 등짝을 부드럽게 토닥이며 끌어안는 후한인심의 온후한 마음자리는 드넓다. 그 속에 피어나는 그 안에 녹아 든 아아! 영롱하고도 황홀한 저 빛깔.

 

그러므로 늘 달리 자신을 실현해가는 존재는 진리 안에 거하는 것이며, 진리를 드러내 보이는 것이며, 진리와 더불어 사는 것이다. 그렇기에 진리를 아는 것도, 소유하는 것도, 따르는 것도 아닌, 경험하는 것이며, 만나는 것이며, 그것과 더불어 하나가 되어 노는 것이다.”<한스 게오르크 가다머(Hans-Georg Gadamer) , 과학시대의 이성, 박남희 옮김, 책세상>





   

 

 ()Before and After-역사에 빛을 더하다, 50×50Acrylic, crystal and Mother of Pearl on Canvas ()50×50㎝ △()70×70, 2015




가쁜 호흡처럼 벅차게 순식간에 밀려온다. 똑같은 것이 하나도 없는, 스스로 발하는 자유자재의 영롱하고 생생한 광채다. 저 조개껍데기를 재발견한 이 누구이던가. 생의 노래를 초롱초롱 얘기하는 듯 한 문양의 그릇은 꽃에게 고아한 마음자리를 허락했다.

 

꽃봉오리 열리며 참신한 우주와 교유할 때 나비가 날아들었다. 백자 위 소복이 만개한 꽃들의 풍만한 매무새는 장식적 효과를 더욱 도드라져보이게 한다. 1두께의 자개를 0.7정사각형 모양으로 만들었고 또 그 사이에 크리스털을 얹은 화면은 눈부셔 찬란하다.

 

자개를 모던한 직사각 형태로 반복한 가운데 작품은 오묘한 시간의 자취와 애수에 잠긴 존재를 위무하는 듯하다. 안으로 들어가거나 밖으로 튀어나오게 보이는 시각적 효과는 보는 방향에 따라 다채로운 칼라로 빛나고 우연과 필연의 흔적과 조우하게 한다. 그리고 오른쪽 작품의 백자에 첨가된 생동하는 나비는 운동성과 생명력을 더하고 동시에 전통을 현대에 잇는 자연스러움의 가교 역할을 수행해낸다.

 

신사임당의 초충도(草蟲圖)에 있는 나비를 차용함으로써 그 분이 보았던 나비를 오늘날의 작품에서 다시금 볼 수 있다는, 역사의 순환을 음미하는 것도 감상의미를 배가시킨다. 한편 자개와 크리스털을 소재로 착시현상을 일으키는 세 개의 둥근 구()는 삶과 죽음, 과거와 현재를 내포하고 있다. 이들이 하나의 화면에 나란히 함으로써 우리들 삶의 군상을 떠올리게 하고 우주의 빛나는 별들을 시각적으로 감지하게 이끈다.


  

역사, 순환의 참됨

작가는 지난 2000‘Before and After’시리즈 첫 발표 후 현재까지 이 미학적 사유에 몰입하고 있다. 자개라는 소재나 백자나 불상 등 가장 한국적 역사성의 유산을 단순히 차용한 것에 머물지 않고 역사에 빛을 더하는 조형성을 통해 현재라는 연속성에 올려놓았다. 그러함으로써 오늘에도 여전히 숨 쉬고 율동하는 그리하여 본래모습을 더욱 돋보이게 승화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작품세계 근간을 이루는 원에 대해 끝도 시작도 없이 순환하는 그것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품고 있다. 가장 단순하면서도 근원적이고 아름다운 도형 속에서 나는 달항아리를 발견하고 백자그릇을 본 것이다. 그들이 나에겐 역사이자 삼라만상의 우주라고 말했다.





   

화가 정현숙 




정현숙(JEONG HYEON SOOK)작가는 이화여자대학교 서양화과 및 미국 펜실베니아대학교 미술대학원을 졸업했다. 현재 대진대학교 현대조형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서울 화랑대역 인근 작업실에서 인터뷰 한 작가는 화폭을 마주하면 존재와 영원성에 대한 성찰의식을 습관처럼 품는다. 사람도 어떤 대상도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나의 작품에서 그런 공감의 감정을 발견하고 느끼고 상상하고 나아가 그것을 재창조할 수 있다면 작가로선 큰 영광이라고 전했다. 오랜 화업에 대한 소회를 묻자 한 가지 일을 가지고 시간과 영혼을 몰입하는 반복적인 작업을 하는 것은 장인(匠人)의 길과 다름 아니다라고 피력했다.

    

 

권동철 미술전문기자/주간한국 2016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