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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KWANG SOO〕 서양화가 이광수|의미를 묻다(화가 이광수,이광수,이광수 작가,이광수 교수,이광수 화백, 시뮬라크르,simulacre)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14. 5. 16. 00:28

 

시뮬라크르, 09-2-1 162.1×130.3, Oil on Canvas, 2009 

 

 

 

사방이 고요하다. 정적만이 흐르는 추야장(秋夜長). 진정 저 달빛은 껴안을 수 없는 것인가. 을야(乙夜)의 시각을 넘어 교교히 넘어가는 저 푸르른 달빛이, 오백년 고택(古宅) 지붕 기왓장에서 잠시 멈춘다서리로 젖은 축축한 대지. 온통 세상은 오직 하나를 위한 것처럼, 길고도 완만한 기와 지붕이 품은 달빛은 기와의 굴곡을 따라 한 곳으로 한곳으로 모인다.

 

 

 

현전과 부재-시물라크르연작개성과 정신 함축 

 

 

 

밤에 핀 장미 한 송이! 수줍었나, 붉다 못해 창백해 보이는 장미의 볼에 마음이 자란다. 아직도 마음잡을 임을 만나지 못했나. 달은 차면 기우는데 저렇게 만개한 꽃잎 위로 가을 밤 바람만 달빛 따라 흐르네언제 또다시 바람의 흐름이 바뀔까. 변함 없는 표정, 꿈쩍 않고 시절을 즐기는 저 홀로움. 꽃잎의 마음은 어디로 비행(飛行)하는 것일까. 첫사랑의 속삭임, 불타오르다 재가 되고만 그리움의 뜨락, 꽃잎 한 장 흘려보낸 애증의 강둑에 앉아 한 송이 꽃 시절이 더 화려했노라 독백하는가.

 

눈앞에 존재하는 사물들과 그것을 인식하는 것 그리고 소통으로 환원시키고 있다. 이광수의 작품세계에서 꼭 빼놓을 수 없는 요소는 필링(feeling)이다. 작가가 의도한 것을 시각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이를테면 관람자의 욕구에 충족될 기능 측면을 배제할 수 없고 또 작가에게 필요불가결한 주제를 위한 개성과 정신의 함축이 중요하기 때문이다.”(김남수 미술평론가)

 

 

 

 

 

시뮬라크르 10-2, Water Color on Paper, 2010.

 

 

 

자아와 타자 간 의미 묻는 작업

 

그러하기에 그의 화면에서 배면 공간과 전면 대상물의 공간은 분리되고 단절된 듯 보이지만 서로 다른 차원의 공간에서 마주치며 새로운 공간으로 다가오게 한다.

 

그의 작업은 기존의 관념을 허물어 내거나 혼돈에 빠지게 된 지점에서 회화의 기능으로부터 시작해 자아와 타자간의 소통이라는 문제의 의미를 묻는 작업에 이르는, 상당히 어려운 문제에 대한 새로운 시각적 패러다임을 구축해 보고자 하는 의도로 읽혀진다.”(이승훈, 사이미술연구소)

 

아아, 가을. 이제 아주 조금 남은, 가는 허리춤 억새 사이 불어오는 바람에 찬 기운이 돈다. 조락(凋落)하는 억새 가는 흔들림으로 깊어만 가는 시간의 변증은 곧 비움의 너그러움인가. 비움도 움직임이다무심히 서 있는 저 억새 몇 그리고 검붉게 익어가는 과실과 휘어지거나 부러진 가지. 그러나 이 적막(寂寞)에 몸 실어 부유하는 깃털과 씨앗은 새 봄 첫 소식을 알리는 새싹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그의 화면에는 은유(metaphor)의 언어들이 넘친다. 자연이 이룬 퇴적의 기록, 인간이 쌓아 온 마음의 탑()이 엮어낸 역사와 자연의 공존!

 

 

 

 

시뮬라크르 09-29, 90.9×65.2, Water Color on Paper, 2009

 

 

꽃 한 송이 피고 짐이 얼마나 깊은 섭리에 의한 것인지를 알고 있는가? 이광수의 조형은 그런 역사의 유구함과 자연의 본령을 인간의 삶에 전치시켜 구성해 낸 특유의 작업이다.

 

이런 조형을 이루어 내기 위해선 정밀한 묘사력, 독특한 상상력, 그리고 절묘한 조화의 기량이 받쳐주지 않으면 안 된다.”(류석우 아트에세이, 작가와의 동행중에서)

 

가을은 그렇다. 달빛 속 장미 한 송이도 그렇지만 조금만 걷다보면 낙엽이 발 아래 밟히고 차()잔을 들었다가도 불현 듯 전화기에 귀가 열리고, 툭툭 새벽녘 홍시 떨어지는 진동이 구들장까지 밀려오면 도 객()일 뿐이다.

 

 

 

 

출처=이코노믹리뷰 문화전문기자 권동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