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의 발자취(年代記)

〔나의그림 나의생애|화가 조향숙,④ 2009~2011년〕정관자득,靜觀自得(JO HYANG SUK,趙香淑,조향숙,조향숙 작가,정호(程顥), 수행시(修行詩)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15. 7. 15. 20:59

  

정관자득(靜觀自得), Woodcut 114×144, 2011. ‘정관자득연작은 산이 잘려나간 구도임에 불구하고 화면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로 인해 화면 밖에 있을 산의 상상적 실체를 느끼게 하여 산의 거대함을 더욱 극대화시키고 있다.

 

 

  

고요히 사물을 보아 스스로 얻음이 있다라는 정관자득(靜觀自得). 북송 유학자 정호(程顥, 1032~1085)의 수행시(修行詩) 萬物 靜觀 皆自得(만물 정관 개자득)’, 우주만물을 고요히 살펴보면 모두 제 분수대로 편안하고라는 표현에서 유래한다. 관조적 시각으로 사물을 보았을 때 사물의 본질을 알게 되고 그 속에서 나를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정관자득, 120×146, Woodcut, 2009

 

 

   

큰 울림 그 사유의 폭 넓혀주는 단순함

작품의 이미지는 산() 일수도 섬() 일수도 있다. 구름일 수도 파도일 수도 있다. 나의 산 속에는 부처도 산새도 있고 온갖 참새도 나무도 이 산속에 있다. 산 속에는 개울이 있고 산 속에 사람이 있다. 그런 산 속에, 들어갔을 때는 보이지만 해질녘 산을 바라보며 고갯마루에 앉아 있으면 그 풍경은 멀리서 보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하나의 덩어리만 보일뿐이다.

 

흐르는 강물처럼 혹은 떠도는 구름과 산을 관조하는 듯 표현된 수성목판화의 강력한 시각적 힘은 사유의 폭을 넓혀주고 먹색의 큰 면에 의한 간결한 표현은 더욱 큰 울림을 던져준다. 누구나의 마음속에도 복잡한 삶의 궤적이 있다. 어머니, 남편, 친구, 욕망을 소멸시키는 절망도 있다. 그러나 바깥모습은 단순하다.

 

 

 

 

   

정관자득, 60×90Woodcut, 2009

 

 

    

자기 길을 찾기 위한 비움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 어디에 있을까. 한순간도 머물음 없는 것이 우주의 이치인데 그래도 인간들은 영원을 꿈꾼다. 그리고 감히 나도 꿈꾼다. 영원성을 쫒아서 잡히지 않는 것을 잡으려했다. 현실 밖의 세상을 꿈꾸며 영원성을 믿으려 했다. 주머니 속에 예쁜 구슬 하나 넣고 혼자만 만지작거리듯, 나는 내 작업 속에서 나를 찾고 찾아서 담아 보려 했다.

 

내 속에 있는 나, 참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그 조용한 소리를 듣고 싶다. 나는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고 싶을 뿐이다. 이것이 바로 정관자득(靜觀自得)이 아니겠는가!

 

 

 

  

 

정관자득, 120×146Woodcut, 2009. 이 작품은 단순함이 힘을 가지는 작업이다. 단순함은 사고(思考)의 여백을 남긴다. 그 여백을 통해 스스로 깨닫게 된다. 이른바 자득(自得)이다. 사물들은 상호 관련성으로 연결되어 있어 다른 사물들도 깨달을 수 있는 법. 종국(終局)에는 자아를 깨닫게 되는 것과 같다.

 

 

 

 

행행원초 지지본거(行行原初 至至本居). 간다간다 하여도 제자리요, 이르다하여도 제자리다 하였다. 바로 그것이 바로 나의 작업인 것을 실감 한다. 비록 그것이 오솔길일지라도 예술가는 자기만의 길을 찾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조그마한 내 것 이라는 비울 것이다. 비워야 채울 수가 것이 아닌가!

 

 

 

 

 

  출처=정리-권동철, 이코노믹리뷰 20131224일 기사